울려라! 유포니엄은 쿠미코의 중학생시절, 지역 취주악 콩쿨 결과발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작품의 감독인 이시하라 타츠야의 성향상 마지막화의 마지막 장면도 고등학생 취주악 콩쿨 결과발표 장면이거나, 최소한 연출적으로 비슷한 장면이 아닐까 예상해봅니다. 이사하라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이야기의 열고 닫음이 대칭성을 띄며 확실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적용된다면, 가장 마지막 장면은 바로 이 중학교 시절의 사건과는 확연히 대비됨으로써 '울려라! 유포니엄'이라는 이야기를 종결시킬 것입니다. 결국 바로 이 첫 장면이(그리고 아직은 방영되지 않은 맨 마지막 장면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가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울려라! 유포니엄의 시리즈 연출 담당이자 1화의 콘티와 연출을 맡은 야마다 나오코는 '다리에 그 사람의 감정이 가장 잘 나타난다'고 말했을 정도로 다리를 굉장히 집중적으로 묘사합니다. 야마다 감독의 작품인 케이온이나 타마코 시리즈에서도 다리를 묘사하는 장면이 자주 나타났고,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이나가 분해하는 모습을 떨리는 다리로 표현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야마다 감독의 특징이라고 할수있는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기법의 차용과, 얕은 피사계 심도입니다. 이것도 역시 그녀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에서 상당한 사실감과 깊이감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부분이자 이 애니메이션을 기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쿠미코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툭 내던져버리는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던져버린 쿠미코의 말 "진심으로 전국에 나갈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리고 레이나의 대답 "넌 분하지 않은거야?"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울려라! 유포니엄'의 이야기가 어떤 주제를 갖고 있는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쿠미코는 음악에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며 즐기고 있고, 레이나는 음악에 높은 목표를 부여하여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음악에 대한 두가지 접근,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및 갈등의 해소가 주된 스토리일 것이라고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악기에 바람을 불어넣어 연주하는 취주악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답게, 입으로 바람을 부는 것에 대한 묘사가 간간히 등장합니다. 취주악의 느낌을 잘 표현하는 장면입니다.




 쿠미코는 키타우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세일러복'과 '이런 저런 것을 한 번 리셋하고 싶어서'라고 말합니다. 그 리셋시키려는 것은 바로 취주악일 것입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가벼운 접근으로 레이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자기 자신의 취주악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나중에 등장하는 쿠미코의 언니의 발언으로 보아 키타우지 고등학교는 그다지 취주악 방면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학교로 알려져있고, 쿠미코도 그것을 알고 키타우지 고등학교로 진학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키타우지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생각보다 너무 못했습니다.




 '전국을 노리는 느낌은 아니었지'라며 키타우지 고등학교가 자신에게 적절한 장소임을 되뇌임과 동시에 '그래도 그건 서투르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에서 쿠미코의 음악에 대한 접근이 '잘해도 못해도 즐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것을 알수 있습니다. 설령 목표가 '전국을 노리는' 정도로 높지 않더라도 그것이 연주실력이 서투르다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취주악부에 견학을 가서 썩 훌륭한 실력이 아님을 확인하는 와중에, 놀랍게도 레이나가 나타나서 입부 신청을 합니다. 레이나를 피하기 위해 키타우지에 진학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쿠미코는 굉장히 당황하게 되면서, 취주악부에 들어가는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미도리는 '음악이란 모든 사람의 마음에 호소할수 있는 강력한 언어'라며 음악이 좋으므로 입부하겠다며 마음을 굳힙니다. 미도리에게도 그녀만의 음악관이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부활동에 대해 물어보는 슈이치에게 '들어가려 했지만 들어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결국 레이나와의 재회를 피하기 위한 선택일 것입니다. 과거 레이나에게 저질렀던 일이 굉장히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쿠미코가 키타우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그녀의 유포니엄 연주실력은 상당한가봅니다. 쿠미코의 언니는 쿠미코가 키타우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것만으로 그녀가 취주악을 관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 쿠미코도 언니의 말에 부정하지 못합니다. 쿠미코는 자기의 음악적인 목표가 너무 낮고, 그로 인해 진지한 자세의 레이나에게 피해를 입힌게 아닌지 자책하며 아예 취주악을 관둘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음악을 연주하던 그 즐거움과 감동을 잊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집니다. 중학교 시절의 악보를 바라보며 빛나는 눈과 단호한 표정에서 쿠미코의 음악에 대한 열의가 느낄 수 있습니다.




 레이나와의 사건으로 인한 죄책감과 음악사이에서 갈등하던 쿠미코의 마음을 한쪽으로 움직인 것은 하즈키였습니다, 그녀가 대뜸 마우스피스만을 사서 즐겁게 연습하는 모습에서 자기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쿠미코는 취주악이 이렇게 쉽게 포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친구들과 같이 취주악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전국을 노리는' 실력파 레이나는 왜 키타우지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일까요? 왜 서투른 실력의 취주악부에 입부하려는 것일까요? 어쩌면 중학교 취주악 콩쿨의 결과가 레이나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중학교시절 이미 한차례 충돌이 있은 후 고등학교에서 재회한 둘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을지, 그 '새로운 이야기'가 대단히 기대됩니다.


덧붙이자면, 물론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소 걱정이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오프닝의 한 장면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이의 행동에 대한 오해는 급기야 그녀의 성적 지향을 의심케 할 지경에 이른다. 아즈사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유이와 매번 거리를 벌린다. 


"다녀왔어!"

유이가 아즈사가 덮치는(!) 장면에서 사용된 셔터연출은 이 부분의 연출을 담당한 이시하라 타츠야가 카논을 감독했을 때 부터 사용했던 기법이다. 이같은 연출은 애니메이션 일상에서도 역시 이시하라 본인에 의해서 한 번 쓰인적이 있다. 같은 작품이라도 부분적으로 연출가가 바뀜에 따라 그 연출가만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는 점이 쿄애니 작품의 특징이다.


따르르릉!

세밀한 캐릭터 묘사의 한계는 어디일까. 다른 캐릭터들이 갑작스런 벨소리에 움츠러드는 정도인 반면, 겁이 많은 미오는 혼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다. 이 장면에서 미오의 반응은 알고 봐도 인지하기 힘들 만큼 순식간에 지나간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정도면 사실상 팬을 위해 숨겨둔 연출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하다.


밥은 반찬♬U&I♬

런던 야외라이브는 이시하라 타츠야의 연출이고, 교실 라이브는 야마다 나오코의 연출이다.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의 연출을 볼 수 있다. 물론 라이브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면에서도 연출가들간의 차이는 잘 드러난다.


천사를 만났어♬

아즈사를 위해 "천사를 만났어"를 연주해 주는 부분은 극장판이 TVA와 겹쳐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부분의 연출에서 극장판과 TVA와의 가장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겠지만, 사실 그보다도 아즈사에 대한 묘사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극장판의 아즈사는 울지 않는다. TVA 2기의 24화에서 아즈사는 선배들이 졸업한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울고, 선배들의 연주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극장판에서 아즈사는 놀랍게도 단 한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부분의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게 구성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두 영상을 자세히 대조해가며 살펴보면 TVA에서 아즈사가 눈물을 보이는 순간에 극장판은 다른 곳을 보여주고, 극장판에서 아즈사의 눈물 없는 모습이 보이는 순간은 TVA에서 다른 곳을 보여주고 있었던 부분이었을 뿐이다. TVA와의 충돌은 피하면서 새로운 연출을 하고자 했던 제작진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듯 하다.


이렇게 극장판과 TVA의 연출이 달라진 이유는 이 장면이 갖는 의미(혹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TVA에서는 아즈사가 선배들의 졸업으로 갈등하는 모습이 중점적으로 그려지고, 선배들의 연주를 들으며 감동하고 그 갈등이 해소된다. 반면에 극장판에서는 그러한 아즈사의 내면적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극장판에서는 곡을 비밀리에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즈사와 유이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조성되고, 마지막의 연주를 통해 그 긴장감이 풀어지게 된다. 즉 TVA가 홀로 남겨지는 아즈사의 심리에 초점을 맞췄었다면, 극장판은 그런 아즈사를 위해 곡을 선물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인 것이다. 극장판은 이와 같이 재해석된 "천사를 만났어"을 통해, TVA에서 보여주었던 감동과는 다른,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결말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잠깐 코가 막혔을 뿐이야!""울 틈 없다고, 미오!"

케이온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발걸음도 각 인물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사에 따른 제스처까지도 다리를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케이온에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묘사의 수준은 굉장히 높다.


영화 케이온도 결국 선배들이 졸업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유이가 직접적으로 "내년"을 언급하면서 영화는 보다 더 열림 지향적인 결말을 맞는다. 이렇게 경음부의 미래를 확실히 인지시키면서도 그 내용은 전적으로 팬들의 상상에 맡긴다는 점은 케이온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일 것이다.



"이상 없음"

선배의 행동은 하나같이 의심스럼기만 하다. 아즈사는 유이가 건내준 기타를 그자리에서 다시 한번 더 살펴본다. 사실 TVA에서도 유이가 아즈사의 물건들에 스티커를 붙여놓는 일이 있었고, 바로 이 극장판에서도 유이가 가위에 장난을 쳤었기 때문에 아즈사가 기타를 확인하는 행동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미세하게나마 갈등-해결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아즈사이기 때문에 이 캐릭터의 묘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타임머신이 아니라구요.""지구의 자전과 반대방향으로 가니까 그런게..."

비행기 안에서 이륙을 기다리며 잡담을 하는 장면에서도 각 캐릭터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연출이 들어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아즈사와 유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묘사다. 유이가 팔걸이를 위로 들어올려서 아즈사와의 거리를 좁히려 하자 아즈사가 바로 팔걸이를 내려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아즈사가 비행기의 안전지침을 살펴보는 행동을 통해서 그녀의 꼼꼼한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미오와 리츠가 좌석 리모컨의 사용법을 무기에게 물어보는 모습에서는 무기의 해외여행 경력이 풍부함을 상기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한 장면에 여러 시각적인 정보를 집약시키는 연출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막이다. 자막이 있는 이상 보는 이의 시선은 아무래도 자막으로 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자막과는 다른 위치에 있는 세세한 연출을 놓치기가 굉장히 쉽기 때문이다. 자막이 없었다면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향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막의 가장 큰 단점이자, 더빙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일본어를 어느정도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이 케이온 극장판 만큼은 한번 자막 없이 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뭐야 이게"탁!

깜짝선물을 위해 아즈사 몰래 곡을 쓰려고 하는 유이는 그녀답게 여기저기 빈틈을 노출하고, 결국 아즈사에게 오해만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이 장면에서도 팔걸이를 사이에 둔 아즈사와 유이의 행동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한번 더 강조된다.


초밥집에서의 라이브를 할 때 회전하는 장식등에 대해 캐릭터들이 보이는 표정은 제각각이다. 역시 각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의 일환이다. 이 장면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한번 보고는 눈치채기 힘들다. 사실 이 작품이 극장 상영용 영화임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세심한 연출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점은 관객들에게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쩌면 케이온을 위해 블루레이를 몇번이고 돌려봐주는 팬들을 위한 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레 후 라이스♬

케이온 극장판에서 경음부의 라이브는 총 세번 나오는데, 각 라이브마다 담당 연출가가 다르다. 그러니까 각각의 라이브 연출의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도, 특히 필자와 같은 쿄빠에게는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다. 이 초밥집 라이브를 연출한 사람은 'Free!'의 감독으로 유명해진 우츠미 히로코다. 


으아아악!

케이온에서 거울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극장판에서 등장인물의 얼굴 표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관찰자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케이온 극장판 특유의 적절히 거리를 둔 시점을 유지하면서도 거울을 통해 표정에 대한 묘사까지 놓치지 않는 점은 대단한 연출력이다.


에?!

원래부터 마구 달려드는 유이를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 극장판에서는 오해에 오해가 겹치면서 아즈사와 유이의 거리는 더욱 벌어진다. 이 장면에서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도 아즈사의 심리를 잘 대변하고 있다. 



따르르릉

영화 케이온 TVA 1기의 오마쥬로 시작한다. 케이온 극장판이 TVA 시리즈가 끝나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극장에서 개봉했다는 점, 모든 관람객이 영화를 보러 오기 전에 TVA를 복습(!)하고 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화 초반부에 케이온 시리즈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줄 만한 요소를 집중적으로 배치한 것은 좋은 선택이다.


앰프의 스위치가 내려가있다키보드의 진공관이 꺼져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경음부가 데스데빌을 흉내내고 있을때 앰프와 키보드의 전원이 꺼져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것이다.


"그만 둬, 둘 다!""하모니카도 불 줄 모르고!"

경음부의 "연극"부분은 두가지가 아주 인상적이다. 첫번째로는 이 장면에 사용된 연출이 그러하고, 두번째로는 이 장면이 영화속에서 차지하는 구성상의 위치가 그러하다.


우선 연출적인 부분부터 살펴보자. 아즈사가 부실에 들어가서부터 화면에 미세한 흔들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같은 화면떨림 연출은 필름 영화에서 핸드헬드(hand-held)기법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화면에 사실성이나 현장성을 부여하거나 긴장감을 조성하기위해 쓰인다. 이 장면에서는 아즈사가 갖는 긴장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쓰였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화면의 흔들림은 아즈사가 유이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눈치채고, 의구심을 품음과 동시에 깨끗이 사라진다. 즉 이 연출은 아즈사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연극 부분은 케이온에 대한 '소개'을 맏고있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케이온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줄 장치가 필요했고, 바로 이 부분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음부의 연극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소재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각 캐릭터들이 하는 대사들은 그 한줄한줄에 각 캐릭터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다. 캐릭터와 배경에 대한 소개를 위한 장면을 따로 배정하면서, 노골적으로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고 적절히 포장함으로써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 낸 점이 아주 뛰어나다.


"유이 나이스!"

케이온은 밝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말 그대로 화면을 밝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 장면에서는 일부러 과다노출을 줘서 화사한 느낌을 내고 있다. 배경이 과다노출을 받고있음에도 캐릭터들의 모습만큼은 뚜렷하게 그려지는 것은 애니메이션만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필름의 영역에서 발전되어온 개념이 애니메이션식으로 변형되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모습은 케이온 극장판 이후로 쿄애니의 작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아즈냥...."

피사계 심도 개념을 이용하여 유이의 눈에 초점을 맞춰서 강조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사실 디지털 작화를 사용하는 현대 애니메이션에 기술적인 의미로서의 초점이라는 개념이 있을리가 없다. 이 장면은 '유이의 눈만 남기고 주변을 전부 블러처리'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눈 주변의 블러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이미 필름의 피사계 심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고, 그 사실을 애니메이션이 이용했다는 점은 틀림없다.


"선물이 유급?"

배경음악의 박자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며 진행되는 캐릭터의 행동과 화면전환도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연출이다. 이 때 부터 선배들, 특히 유이의 행동에 아즈사가 위화감과 거리감을 느끼는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는 점과 선배들과 아즈사의 이야기가 구분되어서 그려진다는 점은 이야기 전개상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톤짱!"

3학년 선배들이 졸업여행을 의논할 동안 아즈사가 딴청을 피우는 모습에서 아즈사가 애초에 선배들의 졸업여행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생각치도 않던 여행에 참가하기로 하자마자 아무것도 없던 계획을 앞장서서 짜나가는 아즈사의 모습도 눈여겨볼만 하다.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중 캉캉

졸업여행 행선지를 정하기 위해 사다리타기를 하는 유이와, 그런 유이를 따라하는 무기와, 그런 무기를 바라보는 미오. 케이온이 캐릭터성으로만 흥행한 애니메이션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인데, 그 캐릭터성을 표현하기위해 치밀하게 들어간 연출만큼은 정말이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원작 : 카키후라이
  • 감독 : 야마다 나오코
  • 연출 : 야마다 나오코{A파트(시작~25:00)&D파트(83:03~끝)}, 이시하라 타츠야{C파트(57:03~83:02)}, 우츠미 히로코{B파트(25:01~57:02)}
  • 각본 : 요시다 레이코
  • 작화감독 : 호리구치 유키코
  • 애니메이션 제작 : 교토 애니메이션

 

케이온은 대단한 작품이다. 케이온이 원작자나 감독의 커리어에, 쿄애니의 사운에, 원작이 연재되던 잡지에,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대단하다는 표현이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케이온을 위시하여 쏟아져 나온 작품들이나, 케이온의 안티테제를 표방하며 나온 작품들을 보면 케이온은 그야말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부정적이든 긍적적이든)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듯하다


그 케이온 시리즈의 가장 마지막 영상물이 바로 "영화 케이온!"이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며 논란을 불러일으킨 TVA 1기와 2기는 일단 차치하고, 이 케이온 극장판 만큼은 TVA와 독립된 하나의 '영화'로서 우수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케이온 극장판의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우수한 부분은 바로 세밀하게 짜여진 연출이다. 케이온 극장판에서는 어쩌면 대사보다도 연출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가 더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연출의 중요성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대단히 크다. 순간 지나가버리는 화면에 담겨있는 의미가 너무나 많아서, 과연 이것을 영화 관람객이 전부 눈치채주기를 기대하고 그려놓은 것인지 의심케 할 지경이다. 스토리라인이나 캐릭터성을 포함한 "영화 케이온"의 모든 요소들은 모두 장면 연출을 통해 표현된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이렇게 캐릭터의 행동 하나하나와 사물의 배치에 닿아있는 연출가의 치밀한 손길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말하자면 케이온 극장판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러한 연출을, 특히 캐릭터들의 행동을 눈치채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케이온 극장판의 리뷰는 극중 주요 장면의 연출을 하나씩 짚어보는 방식으 진행하도록 하겠다.



호타로가 치단다의 전화를 받는 모습은 빙과 초반부와 비교된다

 빙과도 이제 결말로 접어든다. 빙과의 마지막 세 편에서는 추리보다는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마무리하는데 초첨을 맞추고 있다. 각 인물들의 변화한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감히 상상도 못했던 호타로의 모습은 단순히 개그를 위한 연출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표현하기 위한것이다

 치탄다를 따라 새해 첫 참배에 나선 호타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한듯하다. 불변의 신조라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회색빛이 말끔히 걷어진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이성과 논리의 결정체같던 그에게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묘사가 늘어난다. 치탄다와 인사를 나누던 쥬몬지가 자신을 잘 알고있다는 듯한 말을 하자 신통력을 떠올리며 무척 당황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치탄다와 처음 만났을때 그랬듯이, '이미 자신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합리적이고도 직관적일텐데 말이다. 이젠 귀신 목격담도 억새풀을 본 것이라고 치부하지 않을것 같을 정도다.


치탄다와 호타로가 서로를 이성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묘사도 점차 늘어난다

 수제 초콜릿 사건에서는 사토시와 마야카가 부각된다. 오랜만의 오락실 대전과 도난당한 마야카의 발렌타인 초콜릿의 행방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사토시의 심리가 자세히 설명된다. 그는 이미 한번의 큰 변화를 겪은 뒤였으나, 아직 변화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호타로가 치탄다와의 만남으로 갈등을 겪었던 것 처럼, 사토시 역시 마야카와의 만남으로 갈등을 겪었던 것이다. 


호타로도 화 낸다

 이 수제 초콜릿 사건에서 나타나는 호타로의 모습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에서 호타로의 추리는 시시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다. 그는 초콜릿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사토시뿐'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그 어떠한 논리적인 추론도 담겨있지 않지만, 그의 예상은 사실이었다. 이러한 직관적인 추리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사토시라는 인물에 대해서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인의 이해를 바탕으로한 직관은 치탄다의 전문이다. 혼고의 진의를 알아낼때도 그러했고, 바로 다음 에피소드인히나 축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치탄다는 다리 공사를 재개시킨 범인을 지목할때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코나리 씨의 아들뿐'이라고 말한다. 호타로의 추리능력과 치탄다의 타인에 대한 관찰과 이해능력이 결합된 듯한 모습이다. 


치탄다와 호타로는 처음으로 일치된 결론을 내린다

 축제가 끝나고 돌아가는 호타로를 배웅해주는 길에서 치탄다는 그에게 또다른 '고백'을 한다. 그녀는 그에게 자기가 있을곳인 이 마을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치탄다는 호타로가 이곳을 이해해주고, 자신과 같이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최소한 호타로의 마음만큼은 그녀와 함께 하고싶은 것 같다. 게다가 호타로는 사람이 드문 한적한 곳을 선호하지 않았던가.


 추워졌다는 말로 대답을 얼버무리는 호타로에게 치탄다는 이제 봄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빙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치탄다의 이 대사는 아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치탄다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아직 이들에겐 가야할 길이 남아있다. 마치 봄에 만물이 태동하고 변화의 바람이 부는것처럼, 고전부 일행에게도 앞으로 새로운 사건과 변화가 있으리라.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카미야마시의 모습

 지난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빙과의 시나리오 구성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대칭적이다. 빙과의 구성을 대칭성이 드러나게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1

 전통 있는 고전부의 재생

 세키타니 사건

 2

 명예로운 고전부의 활동

 3

 사정 있는 고전부의 후예

 4

 영광스런 고전부의 과거

 5

 역사있는 고전부의 진실

 6

 대죄를 범하다

 7

 정체를 보다

 8

 시사회에 가자!

 학급영화 사건

 9

 후루오카 폐촌 살인사건

 10

 만인의 사각

 11

 어리석은 자의 엔드 롤

 11.5

 지녀야 할 것은

 12

 한없이 쌓인 그것

 십문자 사건

 13

 저녁에는 해골로

 14

 와일드 파이어

 15

 쥬몬지 사건

 16

 최후의 표적

 17

 쿠드랴프카의 순번

 18

 봉우리들은 맑은가

 19

 짐작이 가는 자는

 2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1

 수제 초콜릿 사건

 22

 먼 길로 가는 히나 인형

 빙과에서는 이 대칭성을 통해서 호타로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시나리오적 대칭성과 호타로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에피소드가 "봉우리들은 맑은가"편과 "짐작이 가는 자는"편이다. 이 두 에피소드는 지난날의 호타로를 상기시키며 현재의 호타로가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나타낸다. 


"대죄를 범하다"편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연출

 "봉우리들은 맑은가"편에서 호타로가 사실확인을 위해 도서관에 가려고 하는 모습과 그의 "신경 쓰인다"는 발언에 사토시와 마야카는 경악하고 치탄다는 감동한다. 고전부의 이 모습 "대죄를 범하다"편에서 치탄다의 "지치는 일은 하기 싫다"는 발언에 사토시와 마야카가 경악하고 호타로가 감동하는 연출과 정확히 일치한다. "짐작이 가는 자는"편에서도 마찬가지로 과거와 대칭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호타로가 치탄다의 도움을 받아서 추리를 해나간다는 점과 호타로의 결론이 치탄다의 "인간 신뢰"에 순간적으로 거부되는 점은 "정체를 보다"편과 닮았다.


 "봉우리들은 맑은가"편에서 보여준 호타로의 새로운 모습은 치탄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어째서 이런 귀찮은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오기 선생님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이같은 동기도 오미치 선생님을 이해하려고 했던 치탄다의 모습을 그린 "대죄"편을 떠오르게 한다. 대죄편에서 치탄다의 그러한 행동을 잘 알지 못했던 호타로가, 이제는 치탄다를 감동시킬 정도의 이해심과 배려심으로 충만한 모습은 그의 변화와 그 방향을 아주 확실하게 나타낸다.


세키타니 사건을 다시 언급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짓는다

그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모토는 이제 유명무실해졌다. 그에게 있어서 "해야만 하는 일"의 기준이 치탄다에 의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일을 피하는데 급급했던 그가, "짐작이 가는 자는"편에서는 아예 스스로 판을 벌려놓고 추론을 펼쳐나가기까지 한다. 치탄다의 반대선상에 놓여진 것으로 묘사되던 그가 이제 다양한 표정과 함께 유머러스한 대사를 뱉어내며 그녀와 아주 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미빛 호타로라고 부를만 하다. 


날카로운 반론을 펼치는 치탄다

 또한 이 "짐작이 가는 자는"편에서는 호타로뿐만이 아니라 치탄다의 변화도 존재한다는 점이 아주 눈에 띈다. "정체를 보다"편에서 치탄다는 단순히 호타로를 따라다니며 보조하는 수준에 불과한 수준이었지만,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그의 논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추리를 진행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감상에서 한걸음 나아가, 그러한 결론이 왜 거부당할만한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더욱 깊은 추리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치탄다의 변화가 호타로의 영향임은 분명하다.


 덧붙여서,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나가는 두 사람이 단순한 친구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관계로까지 발전되리라는 것은 지금까지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점이다.



학교 주변의 전원적인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활기에 넘치는 카미야마 고등학교

 드디어 시작된 카미야마 고등학교의 문화제. 문화제에 문집을 내기로 했던 고전부는 주문 실수로 인해 빙과 문집 200권을 판매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문집의 판매대를 늘려달라고 총무위원장에게 부탁하려는 치탄다는 자신이 부탁하는것에 서툴다는 것을 깨닫고, 이리스에게 부탁하는 요령을 물어본다. 사실 여기서 이리스가 치탄다에게 알려준 방법이, 치탄다가 호타로를 휴일에 불러내서 세키타니 사건의 조사를 부탁할때 이미 무의식적으로 사용했었던 것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호타로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그에게는 무척 간단한 일일 것임을 강조하고, 그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이성성을 드러내왔던 치탄다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그녀가 이 '부탁하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남에게 사용하려고 하자 피로감을 느끼며 갈등하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호타로는 충분히 '특별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녀의 피로감을 유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도 다름아닌 호타로다.

치탄다의 피로를 눈치채는 호타로

 한편 마야카는 만화연구부에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녀는 2학년 선배인 코우치와 만화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부딛히며 크고작은 다툼을 야기한다. 이 와중에 만화연구부 부장인 유아사는 마야카를 위로해주려는 모습과 함께 두 사람의 갈등을 동아리의 홍보에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양면성을 나타낸다. "내일 또 한다"고 소개하며 마야카와 코우치의 설전을 홍보하는 부장의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다. 만화연구부로 인해 힘들어하는 마야카는 그 일을 고전부원들에게는 숨기지만, 사토시만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다. 사토시 역시 마야카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마야카가 만화연구부에서 갈등을 빚고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사토시

 그러는 사이에 문화제에선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괴도 십문자 범행 성명과 함께 동아리의 물품들이 줄줄이 도난당한것이다. 일련의 도난사건에서 금세 그 규칙성을 파악한 호타로는 이 사건을 이용하여 고전부의 문집의 판매를 유도하기로 한다. 곧 학교 전체에도 괴도 십문자에 대한 소문이 퍼지며 범인을 찾아내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도 곳곳에서 이뤄지기 시작한다.

아카펠라부에서 사과주스를 잃어버리는 장면. 빙과에는 여러 복선과 암시가 곳곳에 심어져있다.

 처음에는 괴도 십문자를 잡아내는데 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호타로지만, 그것 문집을 홍보하려는 계획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었을 것이다. 이미 학급영화사건으로 크게 데인적이 있기에 그의 날선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표면적으로만 부정적이었을 뿐 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의 추론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지금까지 치탄다의 부탁에 의해서만 추리를 해왔던 호타로가 스스로의 호기심에 이끌리며 추리를 진행하는 모습은 그의 성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추리는 전부 치탄다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호타로의 모습은 귀여울 정도다. 


오레키의 누나의 개입은 언제나 결정적이어서 모든 일은 그녀의 계획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

 홀로 추리를 해나가는 호타로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사토시는, 이번 십문자 사건의 범인을 자신만의 능력을 사용해 붙잡으려 한다. 소위 말하는 안락의자형 탐정인 호타로에게 이번 사건만큼은 한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십문자 사건은 사토시가 아닌 호타로에 의해 해결된다. 전교생 및 모든 손님이 용의자인 상황에서 호타로는 놀라울정도로 치밀한 논리전개를 통해, 십문자 사건의 범인으로 타나베 총무위원장을 지목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어서 호타로는 범인이 총무위원장임을 이용해 빙과 문집의 판매를 의뢰한다. 언제나 자신의 추리 능력을 이용당하기만 했던 호타로가, 이번에는 총무위원회의 통신판매를 이용하기위해 총무위원장에게 교섭을 시도했다는 점은 아주 인상적이다. 게다가 호타로는 타나베의 범행 동기까지 예측하는데 성공하는 완벽한 추리를 선보인다.


 호타로의 추리를 통해 밝혀진 타나베의 동기는 쿠가야마 학생회장에 대한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작년 문화제에 출품되었던 '저녁에는 해골로'의 제작에 참여했던 그는 쿠가야마의 놀라운 그림실력에 감탄했었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그저 한 순간의 놀이였을 뿐임을 알아차리고 분노한다. 아무리 잘 그리려 노력해도 그저 만화의 배경을 도와주는 수준에 불과했던 타나베는, 처음 펜을 쥐고 단숨에 수준급의 만화를 그려낸 쿠가야마가 그 능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은 원작을 썼던 안죠 하루나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토시가 호타로의 추리를 엿듣는 연출을 통해 그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타나베가 자신의 기분을 이해해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안죠 하루나. 그러나 그녀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는 박탈감을 느끼는 대상이었다. '저녁에는 해골로'의 원작을 썻던 안죠 하루나는 만화연구부 소속이었으나 만화 제작은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그런 그녀와 같은 만화연구부 소속이자 친구였던 코우치는 그녀의 작품을 읽고 아예 자신이 만화를 바라보는 가치관을 바꿔버리기까지 한다. 명작같은 것은 없고 오로지 개인의 취향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서는 안죠 하루나가 만들어낸 '명작'서 느끼는 박탈감과 열등감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우치와 갈등을 빚었던 마야카는, 수작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작품과 비교해보던, 그러나 역시 '저녁에는 해골로'보다는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보디 토크'의 작가가 실은 코우치임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토시도 호타로의 숨겨져 있었던 추론능력이 치탄다를 만난 후에 날로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며 열등감에 빠진다. 그의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는 좌우명은 원래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로서의 능력을 자신만만하게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그의 한계를 절실하게 표현하는 문장이 되어버렸다. 이번 사건에서는 호타로의 능력이 한계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한 그였지만, 호타로는 그의 예상을 깨며 저만치 앞서나간 것이다. 사토시는 이러한 자신의 기분을 마야카가 알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었던 마야카였으니 그의 기분을 모를리가 없음은 당연하다.


 십문자 사건의 타나베와 사토시부터  만화연구부의 코우치와 마야카에 이르기까지, 빙과는 하나의 사건으로 각 인물들의 갈등을 아주 짜임새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청춘의 아픔을 겪는 고전부는 문집의 완매라는 소소한 목표의 달성으로 그 아픔을 훌훌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춘의 장미빛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청춘의 어느 순간에 회색빛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비워지는 잔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호타로가 여러 사건들의 수수께끼를 해결해 오는 동안, 치탄다와 사토시를 비롯한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다만 호타로 본인은 아직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저 타인의 영향력에 휘둘리며 수동적으로 그 능력을 사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는 그의 한계는 금방 드러나고 만다.


자신이 혼고의 친구라고 대답하는 에바의 의미심장한 뒷모습. 그녀는 이미 이 일의 전말을 알고있지 않았을까.

 학급영화의 완성을 위해 각본가 혼고의 진의를 추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이리스. 그녀는 사실 호타로의 누나로부터 그의 능력에 대한 말을 전해듣고는 치탄다를 통해 호타로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치탄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이리스의 모습은 철저히 계산적이다. 호타로는 역시 치탄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이리스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된다. 


 고전부는 영화 제작팀의 의견을 들어보지만 어느것 하나 이치에 맞아보이지는 않는다. 포기를 선언하려는 호타로에게 이리스는 개인의 능력에 대해 충격적일정도로 냉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호타로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호타로에게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지만, 그것도 역시 이리스 본인의 이익을 위한 계산적인 발언이었을 뿐이었다. 능력에 대한 자각은 얻었지만, 그 능력을 이용당하기만 하는 호타로는 그렇게 이리스의 의도대로 탐정이 아닌 각본가가 되어버리고 만다.


호타로의 능력을 부러워하는 사토시. 빙과 작품 내내 호타로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채주는 사람도 사토시다.

호타로의 이야기는 영화에서 나타난 조건만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당초의 목표는 혼고가 쓰려고 했던 진짜 각본, 즉 혼고의 진의를 밝혀내려는 것이였음에도 이리스의 말에 휘둘린 그는 자신이 직접 혼고를 대체해버리고 자신만의 각본을 쓰게 된다. 세키타니 사건을 조사할때 세키타니에 주목하지 못했던 것 처럼 이번에도 혼고에 주목하지 못한 그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만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영화소품으로 준비했던 자일의 존재를 놓치는 논리상의 허점도 존재한다. 사토시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그것이 혼고의 각본을 추론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새롭게 호타로가 쓴 각본인지를 예리하게 물어보기까지 한다영화는 성공적이었으나, 그의 추리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호타로가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를 깨닫는 장면은 신선한 연출로 강조된다

 이 와중에 치탄다는 그녀답게 혼고라는 개인의 상황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사실 이것도 어쩌면 '빙과'라는 작품의 서술트릭일지도 모른다. 집필을 중단한 혼고, 각본의 결말을 모르는 제작팀.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혼고는 그 누구에게도 각본의 결말을 알려주지 않은채 집필을 중단한 것인가?  시사회를 마치고나서 바로 지나가듯이 제시되었던 이 의문은 고전부의 추리가 진행되는 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학급영화 에피소드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다시 등장한다. 


 치탄다의 이 의문은 호타로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추리의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깨닫게 한다. 추리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종이에 적힌 문장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 에피소드에서도 치탄다는 혼고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통해 그녀의 진의를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그녀의 타인에 대한 이해력이 다시금 부각된다.


정지된 시간. 이 학급영화 사건에서는 특히 새로운 연출이 자주 시도된다.

 어쨌든 끝난 일은 끝난 일로 덮어보려는 호타로. 생각을 딴데로 돌리기 위해 타로카드에 대해 살펴보는 그는 사토시가 타로카드를 통해 암시한 대로 자신이 주위의 여성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었음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린다. 호타로는 이리스에게 사건의 전말을 캐물으며, 그녀가 자신을 원하는 대로 주무르고 있었던 것임을 깨닫고 크게 낙담한다. 자신의 능력이 그저 남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를 다시 회색빛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만다.


 회색빛으로 돌아가는 호타로에게 극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수영장에서의 사건이었다. 호타로가 수영장 알바로 일하게 되는 OVA는 흔히 서비스만을 위한 에피소드로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 빙과 작품의 전체 구성상 정확히 가운데에 해당함으로서 이 사건을 중심으로 빙과의 시나리오는 대칭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이 에피소드는 호타로의 성장을 그리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호타로의 누나는 언제나 얼굴이 가려진 상태로 등장해서 그녀의 신비적인 느낌을 더한다.

 수영장 에피소드에서는 그 어느때 보다도 더 의욕이 없고 수동적이 된 회색빛 호타로가 그려진다. 그가 학급영화 사건을통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해볼 만 하다. 그렇게 다시 의욕을 상실한 그에게 치탄다는 아주 중요한 말을 꺼낸다. 자신에게 객관적인 기준을 들이댈 필요는 없으며, 주관적이어도 좋다는 것이다.


 그동안 호타로는 자신의 주관보다는 타인의 의견이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옳다고 생각하며 그 의견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호타로의 누나가 지적한대로 "어차피 할 일이 없는"것은 객관적으로 옳은 사실이었고, 이리스의 개인의 능력에 관한 비유도 그 자체만으로는 객관적으로 옳은 말이었다. 그 결과는 물론 주관없이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꼴일 뿐이었다. 이 수영장 에피소드를 통해 호타로는 자신의 능력과 주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되었고, 성장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호타로가 샤프심을 끼우는 장면을 통해 긴장감의 조성과 해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치탄다는 호타로의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물론 그녀 자신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럴 의도도 없었다. 변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호타로에게는 치탄다의 존재 자체가 이미 변화의 이정표인 것이다.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치탄다와 호타로가 어떻게 다른지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치탄다가 어떤 인물인지는 '대죄'편과 '온천'편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한 인형을 통해, 호타로가 사건의 진행을 불완전한 형태로 전해듣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치탄다는 자신이 화낸 이유를 궁금해한다. 정확히는 자신이 화를 냈었던 그 상황, 즉 선생님이 반의 진도을 착각한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그 호기심에 호타로는 공감하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호타로에게 큰 영향을 끼친, 치탄다의 특징적인 성격이 나타난다. 치탄다는 바로 타인을 신뢰하고 이해하려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심지어 자기 혼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머지 호타로에게 까지 부탁을 할 정도 그녀의 인간신뢰는 대단하다.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이정도이니 그녀가 형재자매 관계에 대해 갖는 믿음이 어느정도일지 쉽게 예상이 된다.


 그에 반해 호타로는 기본적으로 불신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귀신 목격담을 늘어놓아도 그것은 전부 억새풀을 잘못 본 것이라고 일축한다. 온천여관을 방문해서 마야카와 치탄다가 목격했다던 목맨 그림자도 분명히 무언가의 착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추리를 시작한 호타로는 어렵지 않게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치탄다는 그의 추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의 추론은, 그녀의 믿음과는 전혀 다르게, 두 자매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이좋은 형제자매라는게 오히려 더 어색할 뿐이다.


호타로가 자신과 치탄다가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는 장면은 다양한 연출로 여러번 강조된다.

 치탄다가 선생님에게 화를 낸 이유를 찾고 여관 맞은편에서 목맨 그림자가 흔들린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치탄다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이해라는 자신의 강렬한 색체를 유감없이 호타로에게 뿜어낸다. 호타로는 그녀가 화낸 이유를 찾고나서 그녀의 인간신뢰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고, 젠나 자매가 서로 돕는 모습을 보며 그러한 신뢰가 "억새풀 만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갖게된다. 


치탄다의 충격적인 발언에 고전부원들이 깜짝 놀라는 이 구성과 연출은 나중에 한번 더 사용된다.

 이렇게 두 사건 모두 호타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는 작품의 후반부에 직접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작품의 전반부에서 계속 보여지는 치탄다와 호타로의 대비가, 후반부에서는 조화를 이루는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런식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칭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작품의 시나리오적인 완성도를 크게 높여준다. 이러한 체계적인 시나리오 구성에 대해서는 후반부 에피소드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봐요 내 말이 맞죠?'라고 말하는 듯 싶다. 이 온천편은 호타로와 치탄다만의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성도 후반부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