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지는 잔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호타로가 여러 사건들의 수수께끼를 해결해 오는 동안, 치탄다와 사토시를 비롯한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다만 호타로 본인은 아직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저 타인의 영향력에 휘둘리며 수동적으로 그 능력을 사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는 그의 한계는 금방 드러나고 만다.


자신이 혼고의 친구라고 대답하는 에바의 의미심장한 뒷모습. 그녀는 이미 이 일의 전말을 알고있지 않았을까.

 학급영화의 완성을 위해 각본가 혼고의 진의를 추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이리스. 그녀는 사실 호타로의 누나로부터 그의 능력에 대한 말을 전해듣고는 치탄다를 통해 호타로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치탄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이리스의 모습은 철저히 계산적이다. 호타로는 역시 치탄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이리스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된다. 


 고전부는 영화 제작팀의 의견을 들어보지만 어느것 하나 이치에 맞아보이지는 않는다. 포기를 선언하려는 호타로에게 이리스는 개인의 능력에 대해 충격적일정도로 냉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호타로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호타로에게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지만, 그것도 역시 이리스 본인의 이익을 위한 계산적인 발언이었을 뿐이었다. 능력에 대한 자각은 얻었지만, 그 능력을 이용당하기만 하는 호타로는 그렇게 이리스의 의도대로 탐정이 아닌 각본가가 되어버리고 만다.


호타로의 능력을 부러워하는 사토시. 빙과 작품 내내 호타로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채주는 사람도 사토시다.

호타로의 이야기는 영화에서 나타난 조건만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당초의 목표는 혼고가 쓰려고 했던 진짜 각본, 즉 혼고의 진의를 밝혀내려는 것이였음에도 이리스의 말에 휘둘린 그는 자신이 직접 혼고를 대체해버리고 자신만의 각본을 쓰게 된다. 세키타니 사건을 조사할때 세키타니에 주목하지 못했던 것 처럼 이번에도 혼고에 주목하지 못한 그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만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영화소품으로 준비했던 자일의 존재를 놓치는 논리상의 허점도 존재한다. 사토시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그것이 혼고의 각본을 추론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새롭게 호타로가 쓴 각본인지를 예리하게 물어보기까지 한다영화는 성공적이었으나, 그의 추리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호타로가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를 깨닫는 장면은 신선한 연출로 강조된다

 이 와중에 치탄다는 그녀답게 혼고라는 개인의 상황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사실 이것도 어쩌면 '빙과'라는 작품의 서술트릭일지도 모른다. 집필을 중단한 혼고, 각본의 결말을 모르는 제작팀.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혼고는 그 누구에게도 각본의 결말을 알려주지 않은채 집필을 중단한 것인가?  시사회를 마치고나서 바로 지나가듯이 제시되었던 이 의문은 고전부의 추리가 진행되는 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학급영화 에피소드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다시 등장한다. 


 치탄다의 이 의문은 호타로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추리의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깨닫게 한다. 추리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종이에 적힌 문장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 에피소드에서도 치탄다는 혼고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통해 그녀의 진의를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그녀의 타인에 대한 이해력이 다시금 부각된다.


정지된 시간. 이 학급영화 사건에서는 특히 새로운 연출이 자주 시도된다.

 어쨌든 끝난 일은 끝난 일로 덮어보려는 호타로. 생각을 딴데로 돌리기 위해 타로카드에 대해 살펴보는 그는 사토시가 타로카드를 통해 암시한 대로 자신이 주위의 여성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었음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린다. 호타로는 이리스에게 사건의 전말을 캐물으며, 그녀가 자신을 원하는 대로 주무르고 있었던 것임을 깨닫고 크게 낙담한다. 자신의 능력이 그저 남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를 다시 회색빛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만다.


 회색빛으로 돌아가는 호타로에게 극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수영장에서의 사건이었다. 호타로가 수영장 알바로 일하게 되는 OVA는 흔히 서비스만을 위한 에피소드로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 빙과 작품의 전체 구성상 정확히 가운데에 해당함으로서 이 사건을 중심으로 빙과의 시나리오는 대칭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이 에피소드는 호타로의 성장을 그리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호타로의 누나는 언제나 얼굴이 가려진 상태로 등장해서 그녀의 신비적인 느낌을 더한다.

 수영장 에피소드에서는 그 어느때 보다도 더 의욕이 없고 수동적이 된 회색빛 호타로가 그려진다. 그가 학급영화 사건을통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해볼 만 하다. 그렇게 다시 의욕을 상실한 그에게 치탄다는 아주 중요한 말을 꺼낸다. 자신에게 객관적인 기준을 들이댈 필요는 없으며, 주관적이어도 좋다는 것이다.


 그동안 호타로는 자신의 주관보다는 타인의 의견이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옳다고 생각하며 그 의견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호타로의 누나가 지적한대로 "어차피 할 일이 없는"것은 객관적으로 옳은 사실이었고, 이리스의 개인의 능력에 관한 비유도 그 자체만으로는 객관적으로 옳은 말이었다. 그 결과는 물론 주관없이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꼴일 뿐이었다. 이 수영장 에피소드를 통해 호타로는 자신의 능력과 주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되었고, 성장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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