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주변의 전원적인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활기에 넘치는 카미야마 고등학교

 드디어 시작된 카미야마 고등학교의 문화제. 문화제에 문집을 내기로 했던 고전부는 주문 실수로 인해 빙과 문집 200권을 판매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문집의 판매대를 늘려달라고 총무위원장에게 부탁하려는 치탄다는 자신이 부탁하는것에 서툴다는 것을 깨닫고, 이리스에게 부탁하는 요령을 물어본다. 사실 여기서 이리스가 치탄다에게 알려준 방법이, 치탄다가 호타로를 휴일에 불러내서 세키타니 사건의 조사를 부탁할때 이미 무의식적으로 사용했었던 것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호타로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그에게는 무척 간단한 일일 것임을 강조하고, 그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이성성을 드러내왔던 치탄다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그녀가 이 '부탁하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남에게 사용하려고 하자 피로감을 느끼며 갈등하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호타로는 충분히 '특별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녀의 피로감을 유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도 다름아닌 호타로다.

치탄다의 피로를 눈치채는 호타로

 한편 마야카는 만화연구부에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녀는 2학년 선배인 코우치와 만화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부딛히며 크고작은 다툼을 야기한다. 이 와중에 만화연구부 부장인 유아사는 마야카를 위로해주려는 모습과 함께 두 사람의 갈등을 동아리의 홍보에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양면성을 나타낸다. "내일 또 한다"고 소개하며 마야카와 코우치의 설전을 홍보하는 부장의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다. 만화연구부로 인해 힘들어하는 마야카는 그 일을 고전부원들에게는 숨기지만, 사토시만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다. 사토시 역시 마야카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마야카가 만화연구부에서 갈등을 빚고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사토시

 그러는 사이에 문화제에선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괴도 십문자 범행 성명과 함께 동아리의 물품들이 줄줄이 도난당한것이다. 일련의 도난사건에서 금세 그 규칙성을 파악한 호타로는 이 사건을 이용하여 고전부의 문집의 판매를 유도하기로 한다. 곧 학교 전체에도 괴도 십문자에 대한 소문이 퍼지며 범인을 찾아내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도 곳곳에서 이뤄지기 시작한다.

아카펠라부에서 사과주스를 잃어버리는 장면. 빙과에는 여러 복선과 암시가 곳곳에 심어져있다.

 처음에는 괴도 십문자를 잡아내는데 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호타로지만, 그것 문집을 홍보하려는 계획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었을 것이다. 이미 학급영화사건으로 크게 데인적이 있기에 그의 날선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표면적으로만 부정적이었을 뿐 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의 추론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지금까지 치탄다의 부탁에 의해서만 추리를 해왔던 호타로가 스스로의 호기심에 이끌리며 추리를 진행하는 모습은 그의 성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추리는 전부 치탄다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호타로의 모습은 귀여울 정도다. 


오레키의 누나의 개입은 언제나 결정적이어서 모든 일은 그녀의 계획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

 홀로 추리를 해나가는 호타로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사토시는, 이번 십문자 사건의 범인을 자신만의 능력을 사용해 붙잡으려 한다. 소위 말하는 안락의자형 탐정인 호타로에게 이번 사건만큼은 한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십문자 사건은 사토시가 아닌 호타로에 의해 해결된다. 전교생 및 모든 손님이 용의자인 상황에서 호타로는 놀라울정도로 치밀한 논리전개를 통해, 십문자 사건의 범인으로 타나베 총무위원장을 지목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어서 호타로는 범인이 총무위원장임을 이용해 빙과 문집의 판매를 의뢰한다. 언제나 자신의 추리 능력을 이용당하기만 했던 호타로가, 이번에는 총무위원회의 통신판매를 이용하기위해 총무위원장에게 교섭을 시도했다는 점은 아주 인상적이다. 게다가 호타로는 타나베의 범행 동기까지 예측하는데 성공하는 완벽한 추리를 선보인다.


 호타로의 추리를 통해 밝혀진 타나베의 동기는 쿠가야마 학생회장에 대한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작년 문화제에 출품되었던 '저녁에는 해골로'의 제작에 참여했던 그는 쿠가야마의 놀라운 그림실력에 감탄했었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그저 한 순간의 놀이였을 뿐임을 알아차리고 분노한다. 아무리 잘 그리려 노력해도 그저 만화의 배경을 도와주는 수준에 불과했던 타나베는, 처음 펜을 쥐고 단숨에 수준급의 만화를 그려낸 쿠가야마가 그 능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은 원작을 썼던 안죠 하루나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토시가 호타로의 추리를 엿듣는 연출을 통해 그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타나베가 자신의 기분을 이해해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안죠 하루나. 그러나 그녀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는 박탈감을 느끼는 대상이었다. '저녁에는 해골로'의 원작을 썻던 안죠 하루나는 만화연구부 소속이었으나 만화 제작은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그런 그녀와 같은 만화연구부 소속이자 친구였던 코우치는 그녀의 작품을 읽고 아예 자신이 만화를 바라보는 가치관을 바꿔버리기까지 한다. 명작같은 것은 없고 오로지 개인의 취향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서는 안죠 하루나가 만들어낸 '명작'서 느끼는 박탈감과 열등감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우치와 갈등을 빚었던 마야카는, 수작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작품과 비교해보던, 그러나 역시 '저녁에는 해골로'보다는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보디 토크'의 작가가 실은 코우치임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토시도 호타로의 숨겨져 있었던 추론능력이 치탄다를 만난 후에 날로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며 열등감에 빠진다. 그의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는 좌우명은 원래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로서의 능력을 자신만만하게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그의 한계를 절실하게 표현하는 문장이 되어버렸다. 이번 사건에서는 호타로의 능력이 한계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한 그였지만, 호타로는 그의 예상을 깨며 저만치 앞서나간 것이다. 사토시는 이러한 자신의 기분을 마야카가 알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었던 마야카였으니 그의 기분을 모를리가 없음은 당연하다.


 십문자 사건의 타나베와 사토시부터  만화연구부의 코우치와 마야카에 이르기까지, 빙과는 하나의 사건으로 각 인물들의 갈등을 아주 짜임새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청춘의 아픔을 겪는 고전부는 문집의 완매라는 소소한 목표의 달성으로 그 아픔을 훌훌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춘의 장미빛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청춘의 어느 순간에 회색빛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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