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웅-

적막 속에서 낡은 에어컨이 매장 안을 울리는 소리만이 내 귀를 때렸다. 점장과 미와코가 카운터에 꼿꼿이 서서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손에 있는 명함과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자신을 공안 조사관이라고 소개한 여성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 그건 드리는 것이니 받으셔도 돼요.”

검은 정장의 여성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아, 예, 그럼.”

나는 뒷주머니에 있던 내 지갑을 꺼내 손에 들고 있던 명함을 조심스럽게 꽂아 넣었다.

“시간을 많이 뺏을 생각은 아니니 몇 가지 묻는 것에 편하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검은 정장의 여자가 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며 이야기했다.

“어젯밤 10시 30분경 이 편의점에 들어왔던 젊은 여성을 기억 하고 있습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그 여성은 어제 자치정부청사에서 반도자치위원장 주재로 이루어진 히사히토 왕자님의 생신 축하 저녁 만찬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정부청사 연회장 근처에서 수상한 거동을 보이고 있는 것을 우리 측 요원들이 포착하고 뒤를 밟았으나 이 편의점에서 나온 후 본격적으로 도주하기 시작했고 결국 일행인 것으로 보이는 남성과 추적을 빠져나갔습니다.”

나는 순간 가슴 한쪽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뜨끔하였으나 일단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선 내가 그 남성인지는 모르는 눈치 인 것 같았다.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표정을 관리하려 최대한 애를 썼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 여자가 무언가 범죄를 저질렀나요?”

“직접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연회장 근처에서 보인 수상한 행동이나 우리 요원들의 추적을 뿌리치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빠져나가는 등 충분히 수상한 점들이 있고 범죄와의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검은 정장의 여자는 내 질문에 처음에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당황해 했으나 곧 다시 밝고 자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무엇보다 잘못한 것이 없으면 그렇게 도망갈 필요는 없겠지요?”

뭐,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아까 같은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뒤를 쫓아오면 잘못한 것이 없어도 도망치고 싶겠다.

“신민의 안전에 관련된 것이라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수사하는 것이야 말로 경찰의 본분인 것이죠!”

내가 알고 있던 공안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 기분이.......

“그래서, 아라세카이씨는 저에게 어떤 것을 물어보고 싶으신 건가요?”

“히토미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

“아, 예. 그래도 초면이고, 갑작스레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셔도-.”

“히토미라고 불러주세요!”

“.......”

“제가 성으로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 하지 않기 때문에. 부탁합니다.”

나는 손으로 내 이마의 미간 사이를 주물렀다. 진지한 얼굴을 보아하니 농담은 아닌 것 같았지만 방금 처음 만난, 제 아무리 본인이 허락했다고 해도 공안 조사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에는 굉장한 부담감이 몰아쳤다.

“.......히토미씨는 그래서 제게 무었을 물어보고 싶으신 거죠?”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일단 어제 그 여성의 인상착의부터 시작하죠!”

검은 정장의 여자는 내가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의 생김새나 키, 목소리나 특징 등을 물어보았지만 나는 자세히 보지 못했으므로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는 식으로 대답하였다. 검은 정장의 여성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나오지 않자 조금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일단은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군.’

대화가 진행될수록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측 보고서에 따르면 어제 그 여성이 편의점을 뛰쳐나가는 순간 편의점 직원, 즉 야스무라씨도 편의점에서 나와서 그 여성을 뒤 쫒았다고 되어있는데 사실입니까?”

역시 내가 그 여자를 뒤 쫒아갔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 왜 이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인가 생각하고 있던 참 이었다. 아까 점장과 미와코에게 말했듯이 변명할 거리는 충분히 머릿속에 들어있다. 침착하게 대답하면 되는 것 이다.

“아, 그게 사실은 그 여성을 도둑이라고 오해했었습니다. 그래서 편의점을 뛰쳐나갈 때 뒤 쫒은 것 이었습니다. 결국 붙잡긴 했지만, 도둑질한 것이 아니라는 오해가 풀렸고 통금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저는 곧장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물론 인상착의 등에 대해서는 어두운 골목에서 본 것이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이야기 하였다. 다행히도 혀가 꼬이는 불상사는 없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흐음.”

검은 정장의 여성은 한 쪽 손으로 턱을 받히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늘게 실눈을 뜬 채 촉촉해 보이는 빨간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갸우뚱 거릴 때 마다 짧은 단발 머리카락이 보기만 해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흰 뺨을 스쳤다. 역시 미인은 무슨 표정을 지어도 미인이라는 건가 세상 참 불공평 하다

‘좋아, 이 분위기대로 가면 더 이상 진행할 이야기도 없고 이 사람들과 다시 엮이는 일은 없을 지도.’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그 여성을 보게 되면 그 때 그 여성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나요?”

“예?”

“야스무라씨는 이번 수사에 중요 참고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그 쪽 연락처를 알고 싶은데요?”

나는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저 그게 지금 휴대폰이 고장 중이라, 개인 사정상 언제 수리가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거짓말은 아니다. 일단 월요일에 수리 센터에 가보긴 하겠지만 수리비가 높게 나온다면 당분간은 주머니 사정상 무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휴대폰을 수리하게 되면 제가 드린 명함의 번호로 연락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다. 게다가 어차피 며칠 후면 나 같은 일개 편의점 직원에 대해선 새까맣게 잊어버리겠지.

“그럼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

말을 마친 후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한 그녀는 그대로 뒤돌아 당당한 발걸음으로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갔다. 유리 너머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에스코트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나지막이 긴 한숨을 쉬었다.

“허어어어.”

“흐아아앙.”

점장과 미와코가 쓰러지듯이 카운터에 기대어 쓰러졌다. 나도 나지막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스무라! 자네가 어제 뒤 쫒아간 그 여자의 정체가 대체 뭐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행히 어제의 그 사람과는 이제 더 이상 마주치거나 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조심해요 선배!”

음음, 역시 미와코는 좋은 아이구나. 나도 더 이상은 그런 수상하고 무례하고 붙임성 없는 여자랑은 엮이고 싶지 않다.

딸랑-!

적어도 오늘 만큼은 말이다. 오늘은 그만 좀 쉬고 싶다. 어제부터 휘둘릴 만큼 휘둘렸다고!

“앗! 손님! 어서오세~”

“생각보다 멍청하지는 않은가 보군.”

깊게 눌러쓴 검은색 모자, 허벅지까지 늘어지는 긴 검정 반팔 후드 티, 하얀 발목을 드러내며 다리의 굴곡을 따라 달라붙고 있는 9부 진청바지, 그리고 가벼워 보이는 운동화. 허리까지 오는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범인은 범죄 현장에 다시 돌아온다는 그것인가. 뭐, 편의점에서는 딱히 저지른 범죄는 없었지만.’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자리를 뜨자마자 이번엔 사태의 원흉 등장인가. 하지만 간이 큰 것도 유분수지! 방금 전까지 이곳엔 자신을 잡으려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던 곳인데, 아무리 자리를 떴다고는 해도 저렇게 당당하게 돌아다녀도 괜찮은 것인가.

“바보 같은 얼굴을 보니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할 이야기가 있다. 밖으로 나와.”

이제는 독심술까지 하는 건가! 아니, 지금은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더 이상 휘둘렸다간 내 소중한 주말이, 5일 근무 2일 휴일 이라는 내 삶의 사이클에서 유일하게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황금 같은 토요일이 이 여자 때문에 몽땅 날아갈 수 도 있다!

“에? 선배 아는 사람인가요?”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아는 사람은 맞지. 아직 이름도 모르지만.

“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편의점에 볼일도 좀 있고, 무엇보다 그쪽하고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예상치도 못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자 내 머릿속은 과부하였고 내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 조차 내뱉은 후에야 깨달았다.

“너에게 거부할만한 권리 따위는 없다고 생각 되는데?”

눌러쓴 모자 밑으로 한 쪽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윽, 자, 잠깐만!”

머릿속에서 다시 새로운 변명이 만들어지는 것 보다 상대방의 행동이 빨랐다. 멍하게 서있던 내게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손을 덥석 잡고선 끌고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알았으니까 잠깐만 기다리라고!”

나는 매장을 가로질러 반쯤 질질 끌려가다가 잡힌 손을 힘을 주어 간신히 뿌리쳤다. 그리곤 틈을 주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그, 그러니까 이거 계산이라도 하고 나갈 테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정말 어제 밤부터 계속 굶고 있었단 말입니다!”

나는 진열된 삼각 김밥을 가리켰다.

“......빨리 나와라.”

딸랑-

어차피 편의점 출입문도 하나뿐이라 내가 도망갈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에에-! 선배! 저 미소녀는 누구에요! 예? 설마 아는 사이에요? 아니 그보다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손까지 잡고!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던데! 에엑-! 선배 어느새 저런 여자를 만나고 있던 거 에요! 선배만큼은 평생 집구석에서 인터넷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 나쁜 오타쿠, 솔로라고 생각했는데! 미와코 선배에게 실망입니다!”

“엥? 그렇게나 미인이었어? 시꺼먼 모자를 눌러쓴 통에 나는 얼굴은 하나도 못 봤구만!”

“점장님. 여자는 여자를 알아보는 법입니다! 저렇게 입고 있어서 그렇지 얼굴도 굉장한 미인에 조금만 꾸미면 엄청난 포텐셜이 엿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한마디로 선배에게는 눈곱만큼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구요!”

“뭐, 그나저나 야스무라군이 교류하는 사람이 있다니 기쁜 일이구만. 우리 가게에서 성실히 일해 주는 야스무라군이 점장은 좋긴 하지만 사람이란 게 말이야 좀 가끔은 야외 활동도 하고 사람들이랑 좀 어울리면서~”

평소 나에 대한 평판이 어떤지 어림짐작 하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역시 꽤 가혹하구나.

“빨리 이거나 계산해 주세요.”

나는 대충 집은 삼각 김밥 몇 개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어차피 여기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저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들어줄리 만무하다. 차라리 빨리 벗어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빨리 말 해봐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입니까! 아니 그보다 어떻게 선배 같은 히키코모리가 저런 미인과 평범하게 대화 할 수 있는 것 입니까!”

“미와코 말이 너무 심하잖아. 점장이 생각할 때 야스무라군은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고? 야스무라군에게도 장점이 있을 수 있잖니!”

있을 수도 있는 겁니까. 나는 전혀 계산을 해줄 생각이 없는 이 사람들 대신 능숙하게 삼각 김밥의 바코드를 찍고 모니터에 띄워진 금액대로 돈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다.

“점장님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미와코 주말 간 고생해.”

딸랑-

“선배! 파이팅 입니다! 미와코 응원할게요!”

나는 미와코에게 대충 손 인사를 하며 고개를 돌려 모든 일의 원흉인 여자애를 찾았다. 그 여자애는 편의점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 변의 가로수에 기대어 서 있었고 편의점 문 밖까지 따라 나와 소리치고 있는 미와코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인 겁니까. 아니, 그보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지금 편의점에 있는 것을 알고서 공안들이 자리를 뜨자마자 쳐들어왔다는 것에 당연히 정답은 하나 밖에 없지만 일단은 물어 보는 것이 좋겠지.

“우린 너에게 시간을 준다고 했지 믿는다고는 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방금은 생각보단 현명하게 대처를 하더군. 네가 일하던 편의점에는 수 시간 전에 이미 도청 장치를 설치해 뒀다. 만약 공안에게 한마디라도 허튼 소리를 벙긋 했다면 네놈은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여전히 나무에 기대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던 그녀는 고갯짓으로 편의점 앞에 주차 되어있던 봉고차와 길 건너 맞은편 건물의 옥상을 가리켰다. 봉고차는 어둡게 선팅이 되어있어서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맞은편 건물 옥상에 누군가가 검은 막대기를 편의점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용건이 뭐죠?”

그래, 그렇게 나를 순순히 풀어 줄 리가 없지.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비록 방금은 공안과 별 문제 없이 넘어 갔지만 어느 순간 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거나 네놈의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 지금 부터는 계속 동행 하도록 하겠다.”

요컨대 밀착 감시라는 것인가. 아까까지와 마찬가지로 내가 모르도록 계속 미행하는 것도 저쪽 입장에서는 상당히 수고스러운 것일 테니 나를 감시하려면 이 방법이 제일 편하긴 할 것이다.

“앞으로 월요일까지 하루 하고 반나절 남았다.”

말을 마친 그녀는 한쪽 손을 들어 무언가 짧은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주차되어 있던 봉고차에 시동이 걸리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내달려 길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옥상위에 있던 사람도 어느 순간 소리 없이 기척을 감추었다. 마치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그래서, 누가 저랑.......?”

일련의 장면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나는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네 눈앞에 있는 사람 말고 여기에 또 누가 있지?”

그녀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아까보다 더욱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아니, 그래도 나는 남자인데 여자 혼자 남자 옆에 붙어서 감시한다니, 그 쪽 사람들 뭔가 경각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네가 날 어떻게 할 자신이 있으면 한번 해 보던지.”

윽, 정곡이긴 하지만 이대로 질 수는 없지!

“흠흠, 아까 편의점에서 남자 손을 덥석 잡는 것도 그렇고 지금의 대사도 다른 사람이 들으면 꽤나 오해할 만한 말인데, 여자라면 조금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언행을......”

후웅-!

퍽!

“커흑!”

훌륭한 바디 블로우다! 뱃속의 창자가 요동치는 통증 덮쳐왔다.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나도 모르게 입에선 침이 한 방울이 흘렀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듯 쪼그려 앉았다.

“아까는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다! 그리고 방금 한 말도 네놈이 그런 식으로 먼저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그런 변명을 해봤자 효과가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평소에도 자각하고 다녀주세요. 라고 말해봤자 더 맞을게 빤하니 관두도록 하자. 물론 지금은 배를 후비는 통증에 신음을 내뱉느라 그런 말을 할 겨를도 없지만.

“그리고 나 혼자라고 한 적은 없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찰랑거리는 긴 흑발을 손으로 쓸어 넘겨 고리로 귀에 고정된 이어폰을 보여주었다. 이 녀석 부끄러움을 느끼면 귀 끝도 빨개지는 타입이었군.

‘근처에서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도록 대기 중 이라는 건가’

만약 내가 월요일에, 혹은 그 이전에 독립군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거부한다거나 도망친다거나 했을 때 이 사람들은 정말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생각일까. 최악의 경우라면 역시 드럼통에 시멘트와 함께 넣어져 앞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겠지. 나는 새삼 이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들인 것인지 느꼈다.

“어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 인거냐 그만 엄살 부리고 일어나라.”

머리칼을 정리한 그녀는 발끝으로 나를 툭툭 차며 이야기했다. 이 여자애도 그렇고 아침에 나를 깨웠던 그 중년의 남성도 그렇고, 겉모습만 보면 그렇게 흉악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단 말이지. 하지만 사람은 겉모습만 봐서는 모르는 법이다.

“끄윽.”

나는 통증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배를 붙잡고 힘겹게 일어섰다. 왠지 그대로 계속 앉아있다가는 또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래서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딱히 뭔가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널 감시하는 것 뿐 이니.”

한마디로 졸졸 따라 다니겠다는 말이군. 나는 차마 겉으로는 내뱉지 못하는 한숨을 속으로 깊게 내쉬었다. 이제 겨우 주말은 토요일 한낮을 막 지나가고 있을 뿐 이었다.

 

----------------------------------------------------------------------------------------------------------------------------------------------------------

 

개강! 개강!개강! 낄낄릮ㄲㄲ끾낄ㄲ끼릮ㄹ낄

 

다음주부터는 분량이...

'휴간 > 21세기 경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세기 경성 (6)  (0) 2015.09.05
21세기 경성 (5)  (1) 2015.08.29
21세기 경성 (3)  (0) 2015.08.05
21세기 경성 (2)  (0) 2015.08.01
21세기 경성 (1)  (0) 2015.07.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