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잘 둘러봐도 전혀 와 본적이 없는 동네였다. 나는 일단 길가로 나가기로 생각했고 조금 걷자 예상했던 것 보다 금방 도로가 나왔다. 이정표를 보니 역시 와 본적은 없는 동네지만 들어본 적은 있는 곳이었다. 일단 버스를 탈 요량으로 길가에 있는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노선표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돌아갈 길을 알 길이 없었다. 핸드폰도 작동이 안 되는 지금은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노선표에서 고개를 돌리자 때 마침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오고 있는, 정장을 입은 30대 초반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사람이 정류장에 다다를 때 까지 조금 뜸을 들이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말을 걸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길 좀 묻겠습니다.”

내가 말을 걸자 그 남자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뭐, 물론 누구라도 다 늘어난 커다란 티셔츠에 헐렁한 츄리닝 바지, 마찬가지로 사이즈가 맞지 않는 슬리퍼를 신고 한손엔 푹 절어 보이는 옷가지가 든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는 성인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면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아, 예,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죠.”

나는 상대방을 의식하며 최대한 공손하게 목적지를 설명했다. 그러자 그 남자도 경계심이 풀리는지 경로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버스가 올 때 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관계로 내가 정류장 의자에 앉자 그 남자도 내 옆에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끝에 어색함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곳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 건가요?”

“아, 사실 그 곳이 제가 사는 곳이거든요. 이 동네는 어젯밤에 처음으로 와 보았습니다.”

“그렇군요. 어젯밤에는 무슨 일로?”

“하하. 이런 저런 일이 있었죠.”

“아, 괜히 곤란한 것을 물어 봤나보군요.”

별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새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도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모양이었다.

“......”

“......”

공교롭게도 버스 안에는 유일하게 두 자리가 나란히 비어 있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그 남자에게 물었다.

“어디 까지 가시나요?”

나는 내가 먼저 내리게 되면 통로 쪽에 앉을 생각으로 그 남자에게 행선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아까 내가 말했던 곳이라 대답 하였다. 의자에서 더 가까운 것은 나였기 때문에 내가 창가 쪽으로 먼 저 들어가 앉았다. 곧 이어 그 남자도 내 옆에 앉았다.

“거긴 무슨 일로 가시는 건가요?”

대충 남자가 자리를 잡자 내가 물어보았다.

“아, 예, 오늘은 토요일이라 회사가 일찍 끝나 주말마다 부업을 하는 곳에 가려고 했는데, 먼저 그쪽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오늘은 제가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서. 출장 같은 거죠. 그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가본적은 없는 동네지만.”

남자는 약간 피곤하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정류장에 앉아 있을 때는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이런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말쑥한 이미지의 선한 인상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주중에는 회사, 주말에는 부업.”

“사실 부업이라고 하기 힘든 것이, 특별히 받는 수입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미래를 위한 투자랄까.”

그렇게 말한 남자는 씁쓸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대화는 잠시 멈추었고 나는 의자에 기대어 버스 창밖을 내다보았다. 모르는 건물, 모르는 사람들이 창문 밖에 영화 필름이 흐르듯이 스쳐지나갔다. 버스는 길을 이리저리 내달려 이윽고 큰 도로로 나왔다. 길가를 따라 광장 같은 곳이 있었고 그곳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동법 개정을 위한 시위로군요.”

남자가 시위 하는 사람들을 보더니 뭔가 아는 듯 이야기 하였다.

“말도 안 돼는 부당한 비정규직 법률과 몇 년째 제자리인 최저임금. 뉴스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시위이죠.”

남자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곤 이야기를 이어갔다.

“직장의 대다수가 어제 잘려나가도 문제없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모든 이익은 기업이, 그리고 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그것을 비호하는 정부. 어느 부분부터 잘못 된 것일까요. 기업? 정부?”

시위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기업을 감시해야하는 정부는 유권자의 투표를 두려워해야 하지만 대다수 유권자들은 각박한 삶속에 정치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죠. 그나마 의식 있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표출 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순간 공안사범으로 몰려 공안경찰의 무지막지한 대접을 받죠.”

이 남자의 말대로 정당한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로는 비슷했다. 공안경찰은 일반 반도자치경찰이나 일본 경찰과는 전혀 달랐다. 60~70년대 일본내 좌익세력이나 전공투, 반도 무장독립운동 등 사회 공안문제가 극에달하자 일본 정부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정보기관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80년대 초, 경찰청과 법무성 등에 흩어져 있던 공안조직들을 통폐합하여 내각 직속의 독립된 조직으로 개편창설 된 일본 공안청은 일본 국내외의 첩보와 공안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었다. 필연적으로 독립단체와 피 튀기는 전쟁을 치러 온 이 조직은 독립군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지독하리만큼 악랄하기로 유명했다. 이들의 활약은 세간에 악명과 명성을 동시에 드높였고 국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이 조선 자치정부에 이양된 후에도 반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 정부기관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 땅에서는 독립 분리주의자다! 이 말 한마디면 어떤 사람이든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한순간입니다. 멀쩡한 사람도 순식간에 공안사범으로 몰려 쥐도 새도 모르게 공안청 지하실로 사라지는 땅에서 노동인권 개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입니다."

"......."

그 남자는 내가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황급히 밝은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하하,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요.”

말을 마친 남자와 나는 말없이 조용히 앉아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우리 둘은 버스에서 내렸다.

“혹시 찾는 곳이 있으면 제가 알려드릴까요.”

“아, 감사합니다만, 일행이 근처에 있어서 괜찮습니다.”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그 남자를 뒤로한 채 익숙한 골목 어귀에 들어섰다. 낯익은 건물과 길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놓이는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정류장에서 10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20년이 훌쩍 넘은 원룸건물이었다. 말이 좋아 원룸이지 불법으로 3층 주택을 불법으로 개조해서 만든 건물로 거의 방의 크기는 고시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매우 낡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할머니 밑에서 자라 성인이 되자마자 아무준비 없이 집을 뛰쳐나온 내가 이런 곳이라도 좋은 조건에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찰칵-

문을 열자 약간 퀴퀴하고 습기 찬 냄새가 흘러나왔다. 이 단칸짜리 집에는 옷장과 조그마한 냉장고, 노트북이 있는 작은 책상, 한명이 간신히 누울만한 침대가 놓여있을 뿐 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발 디딜 틈이 부족 했다.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날려 축 늘어졌다. 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와 함께 밀려온 공복감에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밤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지.’

나는 빌려 입고 온 옷을 갈아입었다. 세탁해서 돌려주는 것이 도리겠지. 나는 문득 만일 내가 월요일에 다시 거기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 여자애는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을 알고 있다. 내가 출근하지 않고 잠적하더라도 결국은 여기 살고 있는 것을 알아낼 것 이다. 그렇다고 이 원룸에서까지 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나는 일단 해야 할 일을 하기로 생각했다. 우선 세탁이 먼저였다. 이 원룸의 주인도 이 작은 방과 화장실에 세탁기를 놓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층마다 세탁실을 복도 끝에 마련해 동전을 넣고 사용할 수 있는 세탁기를 구비해 놓고 있었다.

‘세탁기를 사야할 필요성은 없어졌지만, 세탁기 사용까지 유료라니.’

나는 빌려온 옷과 내 옷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시 복도로 나와 세탁실로 걸어갔다. 세탁기에 세탁물을 쏟아놓고 세제를 담고 있을 때였다.

“어머! 이게 무슨 냄새야!”

고막을 찌르는 듯한 고주파의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봤다. 팬티인지 반바지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짧은데다가 몸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며 달라붙는 타이즈와 마찬가지로 일부로 작은 사이즈를 샀는지 가슴 부위가 터질 것 같은 흰색 민소매 티, 염색을 했는지 금발의 모습을 하고있는 젊은 여자가 코를 막은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거 죄송하게 됐슴다. 옆에 거 쓰세요.”

나는 황급히 시선을 다시 세탁기로 돌리며 태연한척 말했다. 내 뒤에 서있던 사람은 20대 중반의 옆집 여자였다. 이름도 제대로 모를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트러블이 생겨 몇 번 서로 언성을 높인 적이 있었다. 뭐, 주로 내 쪽에서 항의한 것 이지만. 이 옆집 여자는 수시로 집에 끌고 오는 남자가 바뀌었다. 그리고 남자를 데리고 오는 날은 십중팔구는 늦은 새벽까지 방음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되는 벽 너머로 소리를 질러대 다음날 일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한번은 며칠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새 들려오는 소리에 참다못한 내가 반정신이 나간 상태로 항의했지만 이 여자는 코웃음 치면서 사생활간섭이라며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뒤로 이 여자와 종종 마주칠 때마다 나와 그 여자 사이엔 냉기류가 흘렀다.

“대화는 사람을 보고 얘기 해야지요?”

그 여자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내가 당황해 하는 것을 느꼈는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시비를 걸어왔다.

“아, 제가 좀 바빠서.”

나는 온힘과 정신을 집중해 최대한의 무표정을 지으며 그 여자를 돌아보고 대답했다. 그 여자는 내 얼굴을 보더니 입 꼬리가 굳어지며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그거 냄새 배기면 책임 질 거 에요?”

“그 땐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나는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딱 잘라 대답하며 그 여자 옆을 지나쳐 세탁실을 나왔다.

“냄새야! 뭐 어디서 여자랑 시궁창에서 뒹굴기라도 했나? 뭐 어울려 줄 여자 수준은 안 봐도 빤하지만!”

마치 들으라는 듯이 외치는 옆집 여자의 혼잣말이 세탁실을 삐져나오는 것을 나는 애써 무시하며 내 호실로 돌아갔다.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으으으......’

탁!

아무리 냉장고를 열고 있어 봐도 텅 빈 냉장고에서 음식이 생겨날리 만무했다. 세탁물을 걷어서 침대 위에 펴놓은 건조대에 널고 나니 저심시간은 이미 훌쩍 넘긴 뒤였고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댔다.

‘어차피 밖에 나가야겠지.’

일단 가장 급선무인 편의점에 들려 점주에게 어젯밤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물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 할 생각은 없지만. 그리고 겸사겸사 편의점에서 주말동안 먹을 식료품을 사기로 했다.

‘핸드폰 수리 센터는 주말이라 닫았을 거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나는 집에서 나왔다. 핸드폰 수리 센터는 편의점과 반대방향이었지만 평일 이외에는 열지 않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주말동안은 놔두기로 했다. 딱히 연락할 사람은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편의점에 갔다가 돌아와서 아무생각 없이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점장은 인건비를 아끼려 주말 오후 파트에 직접 근무를 했다. 아마 지금 쯤 편의점에 있을 것이다. 점장에게 어젯밤 일에 대해 이야기 할 변명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편의점이 보였다.

딸랑-

“오! 오랜만이에요 선배!”

“야!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카운터에서 두 명의 목소리가 앞 다퉈 들려왔다.

“너, 어제 갑자......”

“선배! 점장님한테 들었어요! 어제 마감 직전에 갑자기 웬 여자를 쫓아 뛰어 나갔다면서요! 무슨 일 인거에요!”

점장을 가로막으면서 쉴 새 없이 말을 내뱉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주말 오전 파트 아르바이트생인 타케시 미와코였다. 미와코는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고생으로 반년 전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 했을 때 내가 2주 동안 책임지고 교육한 뒤로 나를 볼 때면 선배라고 부르는 아이였다. 저번에 주말 오후 대타 출근했을 때 본 것이 마지막이니까 거의 한 달 만인가.

“가게도 내팽개치고 첫 눈에 빠진 여자를 쫓아가다니! 드디어 선배가 사랑에 빠진 건가! 선배가 그렇게 저돌적인 사람인 줄 몰랐어요! 꺄악-!”

음, 이 뭔가 굉장히 여고생 같은 느낌. 오랜만이군. 2주간 교육을 맡았을 때 적응하느라 고생했었지.

“그렇게 뒤 쫓아 가서 어두운 골목에서 그녀를 붙잡고! 벽에 딱! 거칠게 밀쳐서! 막! 첫눈에 반했어요! 하고! 막 고백을! 아, 아니면 설마 선배! 그 이상 나쁜 짓을.......!”

“어이 야스무라 난 자네가 나쁜 짓을 할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게 했다면 그건 범죄야! 평소에 조용한 사람이 한번 어긋나면 폭주한다던데 그게 자네 일 줄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하고 있는 말이 끝날 때 까지는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마지막에 가선 결국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기정사실화 하고 있잖습니까.

“벽으로 몰아친 그녀에게 거칠게 키츄으으윽, 아파파팟! 선배 아파요오옷!”

나는 조용히 한쪽 손으로 미와코의 머리를 지압하듯이 꾹꾹 눌러댔다. 교육 1주차가 끝나 갈 때 쯤 터득한 ‘폭주 상태’의 미와코를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어제 밤엔 그러니까.......”

나는 어제 일에 대해 대충 그 여자애를 도둑으로 잘못 오해해 뒤쫓아 갔고 결국 오해는 풀렸지만 쫓던 도중 실수로 핸드폰을 떨어뜨려 고장이 난데다가 통금시간이 가까워져 가게로 돌아 올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곧장 집으로 간 것 이라고 설명했다.

“뭐 큰일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또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해. 어제 덕분에 마감 정리가 늦어져서 나까지 통금 시간에 걸릴 뻔 했다고! 마음 같아선 어제 그 시간만큼 시급에서 깎고 싶지만 봐주는 줄 알아!”

“네, 조심할게요.”

“에이- 겨우 그런 거라니. 선배 이제야 좀 남자다워 지나 했더니.”

일단은 어떻게든 무난하게 넘어 간 것 같았다. 그 후로 별로 시답지 않은 잡담을 나누다가 미와코와 점장은 다시 인수인계를 시작했고 나는 식료품 코너로 발걸음을 막 옮기려는 참이었다.

딸랑-

“어서 오십.......시오.”

등 뒤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장의 인사가 반사적으로 나오다가 뭔가 시원찮게 끝맺는 것이 이상해 뒤를 돌아보자 카운터 앞에 덩치가 좋고 검은색 정장을 빼어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위압적으로 서있는 것이 보였다.

“묻고 싶은 것이 조금 있어서 왔습니다. 어제 밤에 여기서 근무하던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예? 아, 저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지.......”

“묻는 것에만 대답하시오!”

검은 정장의 남자가 일갈하자 점장은 새하얗게 질려서 내 얼굴과 그 남자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미와코도 잔뜩 겁에 질려 한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저, 무슨 일로 찾는 것인지 말씀을 해주셔야......”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일단 당신, 우리랑 함께 가야겠소.”

말을 마친 남자는 거칠게 카운터 문을 열었다. 점장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고 미와코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제가 어제 밤에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무슨 일 이신가요.”

나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놀라 간신히 입을 열어서 말했다. 내가 어제 근무했던 사람이라고 밝히지 않았다간 점장에게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자네 이름은?”

점장에게 향했던 시선이 빠르게 내 쪽으로 돌아왔다.

“야스무라 토우마입니다.”

나는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내가 그쪽으로 가지 않으면 그 남자들이 내 쪽으로 올 것 같았다.

“어제 밤 열시 반 경 당신이 여기서 근무하고 있을 때 들어왔던 여성을 기억 하고 있겠지?”

“아, 예 그렇습니다만.”

‘역시나’가 역시나이다. 분명 어제 그 여자애 혹은 그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제 그 여자에 대해 좀 듣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우리와 좀 동행해 주실까.”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여자와 전 아는 사이도 아니고 어제 여기에 들어왔을 때 처음 본 사람입니다.”

등에서 어느새 땀이 나기 시작했다. 손끝이 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글쎄, 그건 우리랑 가서 천천히 이야기 해 보고 일단 밖으로 나가지?”

“뭐 하시는 분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당신들을 따라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들은 어제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관련 돼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일단은 침착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예예, 우리 직원이랑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일단 이야기를 좀-.”

“맞아요! 여기서 계속 이러시면 경찰을 부를 거 에요!”

점장과 미와코도 덜덜 떨면서 거들었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남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명이 안주머니에서 꺼낸 막대기를 휘두르자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쇠로된 삼단봉이 펼쳐졌다.

“으윽!”

“꺄악-!”

점장은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다가 팔이 꺾여 제지당했고 미와코는 비명을 질렀다. 삼단봉을 든 다른 한명은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얼마가지 못해 나는 벽 쪽으로 몰렸다. 내 앞에선 검은 점장의 남자가 삼단 봉을 든 팔을 높이 쳐드는 것이 보였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멈추세요!”

갑자기 들려온 젊은 여자의 외침에 나는 눈을 떴다. 편의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주목이 모두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돌아갔다.

“우리는 단지 필요한 정보를 들으러 온 것이지 범죄자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명백히 불법입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편의점 문 쪽 이었고 편의점문은 어느새 열려져있었다. 문에 달려있던 종이 딸랑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검은색 정장상의와 치마, 안에는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서있었다.

“아, 아가씨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잠시-.”

“제가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고 했을 텐데요.”

“아, 죄송합니다. 조사관님. 하지만 현장일 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느새 뒤따라 들어온, 마찬가지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던 남성이 쩔쩔매며 말을 했다.

“아무리 공안사건 관련 용의자라고 해도 현행범이나 지명수배 받고 있지 않는 한 영장 없이 강제로 연행 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저들은 무고한 시민이지 않습니까. 당장 그만 두도록 하세요.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뒤 따라 들어온 남성은 조금 멈칫거리더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편의점 안에 있던 남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저희는 그럼 이 앞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부르십시오.”

딸랑 딸랑-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머지 두 명을 데리고 편의점을 나갔다. 편의점은 안은 갑작스럽게 정적에 휩싸였다.

“흠흠, 대충 이야기는 밖에서 들었습니다. 그 쪽에 계신 남자 분이 어제 밤에 여기서 근무를 하셨던 분이시죠?”

그 젊은 여자는 내 쪽으로 걸어오면 이야기 했다. 작은 얼굴에 잘 어울리는 짧은 단발머리, 진한 눈썹에 큰 눈, 생기 있는 눈동자, 작지만 오뚝한 코, 입술에 머금고 있는 자신감 있는 미소. 가까이서 보니 생각 보다 엄청나게 젊은 여자였다. 아니, 젊다기보다는 나랑 몇 살 차이 안나 보일 정도로 어려 보였다.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있기는 했지만 키도 내 가슴팍보다 작은 듯 했다. 하지만 옷 위로 두드러지는 가슴만큼은 그녀가 더 이상 말할 것 없이 훌륭한 성인인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영양분이 그쪽으로만 간 것인가!’

“흠흠!”

젠장, 나도 모르게 멍 때렸다.

“아, 예, 예! 제가 어제 밤에 근무했던 직원입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 제 소개부터 하죠.”

그녀는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뽑아 나에게 건넸고 나는 그 명함을 공손하게 받아서 들여다보았다.

“공안.......”

“공안청 조사 제3부 소속 조사관. 아라세카이 히토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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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올린다 그랬는데 1시간 늦었땅!

다음주는 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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