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연애 노선이 작렬하는 8화입니다. A파트와 B파트가 내용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도 특징적입니다. 연애 노선은 주로 A파트에서 다뤄지죠. 가장 첫 장면은 7화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직접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항상 전 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며 바로 오프닝으로 들어갔었는데, 이렇게 콜드 오픈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1화를 제외하면) 처음입니다.


 하즈키로부터 '츠카모토'와 사귀냐는 말을 듣고 쿠미코는 처음엔 그게 누군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소꿉친구로 지내면서 이름으로만 불러왔기에 성을 잊어버릴 정도가 된 것이죠. 서로의 호칭으로 등장인물들 간의 거리감을 나타낼때 이름을 모르는 상황을 종종 봐왔지만, 성을 모르는 것은 또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하즈키를 포함해 주변 모두가 축제로 들떠있을 때, 쿠미코는 축제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나츠키가 '쌩뚱맞다'고 표현한 이 점이 바로 레이나가 '쿠미코라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점에서 쿠미코와 레이나가 비슷하기도 합니다.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부분에서 말이죠.




 매 순간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흘러가는 와중에도 잠깐이나마 쿠미코의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나타납니다. 강가에서 저 먼 수면을 바라보며 진지한 눈빛으로 '좀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쿠미코의 배움의 자세는 레이나 못지 않아보입니다. 이 눈빛은 1화에서 취주부 입부를 고민할때 악보를 바라보던 그 눈빛과도 흡사합니다. 슈이치를 포함한 취주부원들이 오디션이나 전국 콩쿨 진출을 목표로 연습을 할때 쿠미코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타키 선생님이나 콩쿨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부여된 동기가 아닌 내면의 동기가 존재한다고나 할까요. 이부분에서도 역시 레이나와 쿠미코의 동질성이 느껴집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했던가요. 하즈키는 슈이치가 쿠미코를 바라볼때 그것이 자신을 향한 시선이 아닐까 생각했었고, 슈이치는 쿠미코가 시선을 피하는 것을 밖에서 이야기하자는 신호로 생각했습니다. 하즈키는 슈이치가 자기를 봐주길 바랐고 슈이치는 쿠미코가 대답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뭐, 결국 전부 착각이었지만요. 




 A파트 내내 사고회로가 엉망진창이 되며 보는 사람을 미소짓게하는 쿠미코는 마지막 순간까지 혼란에 빠집니다. 덕분에 마지막 순간까지 시청자는 웃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B파트에서는 분위기가 다소 침착해지고, 오랬동안 기다려왔던 레이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레이나의 대사 분량이 너무 적어서 도대체 레이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들었는데, 드디어 쿠미코 덕분에 그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즈키는 사복으로 스커트를 입는게 거의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이 날을 특별히 준비했다는 것이겠죠. 한편 미도리는 음표 무늬 유카타입니다. 미도리는 만사가 음악으로 통하는 사람이죠. 이번화에서도 사랑을 열심히 음악에 비유하더니, 축제날도 예외는 아닙니다. 가끔 보면 음악의 화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레이나는 하늘색 원피스에, 무엇보다 놀랍게도, 힐을 신고 왔습니다. 자기가 산을 올라갈 생각을 했으면서 힐을 신고 오다니 그야말로 별종이죠. 단 한 순간도 느슨해지지 않는 완벽주의자같다라고나 할까요. 반면에 쿠미코는 평범하게 가벼운 옷차림으로 왔습니다. 이 대비가 레이나를 더 돋보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동안 간간히 짧은 대화만을 나누던 두 사람 사이에 본격적으로 긴 대화가 시작됩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레이나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형태입니다. 레이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백'이죠. 




 그나저나 힐을 신고 산을 오르는데 발이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이미 발 뒷굼치가 빨갛게 까졌습니다. 저런 상황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레이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잘 알겁니다. 그런데 레이나는 전혀 싫은 내색 없이 산을 오릅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것일까요. 스스로를 일부러 고행의 길로 내모는 듯한 인상도 받습니다.


 이렇게 마조히스트 끼가 다분한 레이나의 모습에 쿠미코가 '야하다'고 농담하자, 레이나는 '변태'라고 받아치고는 소리내어 웃습니다. 그렇습니다, 레이나가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는 것입니다. 바로 쿠미코의 앞에서 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가까운 상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아스카는 특유의 냉철함을 다시 드러냅니다. 악기든 음악이든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없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했다면 참 의지가 넘치는 대사였겠지만, 내면이 공개된 아스카의 입으로 들으니 오히려 차갑게 느껴집니다. 레이나 못지않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레이나는 '쿠미코와 같이 놀고 싶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A파트에서 레이나의 시선이 쿠미코에게 향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레이나는 쿠미코와 축에게 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바랐기에 자꾸 쿠미코에게 시선을 주었던 것이고요. 이렇게 레이나가 쿠미코에게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쿠미코의 '성격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격 나쁨이 바로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게 만드는, 즉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었죠. 다시말해 자신의 속마음을 무심코 툭툭 내밷는 바로 그 버릇이 쿠미코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레이나는 쿠미코의 착한 가죽을 벗겨내면 자기랑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게 아닐까요. 성격 나쁜것으로 치면 레이나도 더 나쁘면 나빴지 절대 좋은 편은 아니니 이 '성격 나쁨'이 이 두사람의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말할수도 있을겁니다. 




 "이해하지?"라는 한마디로 레이나의 마음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응, 알아"라는 한마디로 쿠미코의 마음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레이나는 쿠미코가 자신을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쿠미코는 레이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하다는 점은 중학교 송별회때의 곡을 같이 연주하는 부분에서 미루어 볼 수 있습니다. 레이나가 좋아한다는 그 곡의 연주는 오직 쿠미코만이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세상'인 키타우지 고등학교에서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