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저쪽에 차를 대어 놨거든요!”

 

나를 끌고 가다 갑자기 멈춰선 그녀는 골목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금방 올게요!’ 라고 외치며 종종걸음으로 골목 안쪽을 향해 뛰어갔다.

 

진정하자. 일단 머릿속을 차분히!’

 

툭툭-

 

허억?”

 

머리를 감싸 쥐며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간 누군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고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나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받아라.”

 

깜짝 놀라 당황해하는 나에게 다짜고짜 무언가를 내밀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던 그 여자애였다. 그사이 집에 다녀왔는지 옷이 바뀌어있는 그녀의 얼굴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복잡 미묘한, 굳이 따지자면 너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라는 느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언제부터?”

내가 이곳에 도착한건 네가 저 여자와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부분부터라고 하면 될까? 물론, 네가 집에서 나올 때부터 우리 동료들이 계속 너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어째 다분히 오해적인 부분부터 목격해버렸다. 그건 그렇고 역시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 인가.

 

시간이 없다. 일단 받아라.”

이건 뭐죠?”

네가 하는 말을 우리가 들을 수 있게 하는 장치다. 네 녀석이 저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할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수는 없지.”

 

좋게 말해서 그렇고 도청장치고, 나쁘게 말한다면 목줄인건가. 나는 그녀에게서 무전기 같이 생긴 작은 디바이스를 건네받아 주머니 속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말을 할 때는 고민을 하고.”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쳐 보이며 경고를 한 그녀는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몸을 휙 돌려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머리를 식히기는커녕 더 복잡해져 버렸잖아......’

 

빠앙!

 

당겨오는 뒷목을 주무르고 있는 내 앞으로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가볍게 클랙슨을 울렸다.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고급스럽고 세련된 중형 세단이었다.

 

저에요! 타세요!”

 

짙게 선팅 된 창문이 내려지자 운전석에 앉은 아라세카이 히토미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앞좌석에 타야하나 뒷좌석에 타야하나하고 고민했지만 만약 뒷좌석에 앉을 경우, 대화를 할 때마다 백미러로 얼굴을 마주치는 타입이라고 생각되는 그녀의 성격을 고려하여 오히려 부담이 적을 것 같은 앞좌석을 선택했다.

 

“......”

 

내가 앞문을 열고 자리에 앉자 그녀가 살짝 긴장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한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 역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옆자리에 앉는 것은 조금 그렇지요?”

, 아니에요! 사실 이 차를 사고 나서 누군가를 태우는 것은 처음이라 서요. 동료들에게 권유해도 항상 거절을 하니까....... 괜찮아요. 앉으셔도 되요!”

 

활짝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아는 사이라도 전 공안청장, 현 국회의원의 딸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는 것은 부담스럽겠지.

 

부우웅-

내가 안전벨트를 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부드럽게 차를 출발 시켰다. 작은 키 때문에 좌석을 바짝 앞으로 당겨 앉은 그녀는 의외로 능숙하게 운전을 했다. 조금 여유가 생겨 둘러본 차안은 외형과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디자인이었고 출고 된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약하게 새 차 냄새가 남아있었다.

차까지 태워 주시고,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가자고 한 거니까 당연한걸요.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먼지만큼 무가치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던 사람이 듣기엔 좀 황송하네. 이런 미인에게 점심식사를 대접받는 것도 모자라 드라이브까지 받다니 오히려 내가 엎드려 절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거리가 있으니까 편하게 있으세요.”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은 어느새 처음 보는 건물들로 바뀌어 있었다. 복잡한 길을 망설임 없이 운전하고 있는 그녀는 반도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것이 분명했지만, 20년이 넘도록 이곳에 살았던 나보다도 경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을 아가씨가 일본인이라면 누구든지 기피하는 지저분한 반도까지 와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이런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

 

살짝 고개를 돌리자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운전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많게 쳐줘야 대학생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녀가 아이들이 울다가도 이야기만 들으면 뚝 그친다는 공안경찰이라니.

 

무언가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

 

이런, 너무 대놓고 바라봤나! 하지만 좋지 못한 도로사정 때문에 덜컹거리는 차의 진동에 맞춰 위아래로 리얼하게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가슴은 남자라면 누구든 시선을 뺏기지 않을 수가 없지!

 

,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안해요. 빨리 가는 길을 생각해내려다 보니 그만 신경써드리지 못했네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 이제 다 왔어요!”

 

그녀의 말과 함께 차의 속도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와 본적이 없는 동네였지만 나는 단번에 이곳이 어느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여느 경성 시내와는 달리 깔끔하고 쾌적한 길거리, 도로를 따라 쭉 늘어선 세련된 고층 빌딩,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게들과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 거주하고 있는 인구 중 상당수가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인들로 이루어진 일명 혼마찌, 명동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일본인들 이외에도 자치정부나 재계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살고 있는 이곳은 경성 최대의 번화가였다.

 

레스토랑?”

 

차가 멈춘 곳은 주차장까지 완비되어 있는 고풍스런 유럽 양식의 2층짜리 건물이었다. 간판은 읽을 수 없는 필기체로 쓰여 있었지만 한눈에 레스토랑임을 알 수 있는 분위기의 가게였다. 적당한 위치에 주차를 한 뒤 차에서 내리자 눈에 들어오는 주차장에는 평소에 보기 힘든 고급 외제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런 곳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나는 너무 순순히 따라왔음에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예약하신 분의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드라마에서나 보던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외양과 마찬가지로 충실하게 유럽풍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는 가게 안은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인지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였다.

 

예약을 해놓지는 않았습니다만.”

죄송하지만 그렇다면 본 점을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히토미의 대답을 들은 남자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의 말투에는 무언가 불친절한 느낌이 다분하게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럴 것이 청바지에 셔츠, 운동화 차림의 나는 정장을 빼어 입고 앉아있는 다른 손님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가요. 아쉽네요. 죄송해요 토우마씨. 제가 좀 더 알아보고 올 걸 그랬네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다른 가게를 찾아보도록 하죠!”

 

그녀의 얼굴엔 아쉬움과 미안함이 역력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보고 있으니 오늘 이런 가게에, 이런 미인과 함께 올 줄 알았다면 옷을 빌려서라도 차려입고 있었을 걸!’ 하고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손님 잠시만!”

 

우리가 멋쩍게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손님, 본토에서 오셨습니까?”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그 직원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히토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정말 죄송합니다. 신분증을 확인 할 수 있을까요?”

 

직원의 요청을 들은 히토미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잠시 머뭇거렸지만 내가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 하고 곧바로 신분증을 꺼내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VIP회원분과 1급 신민증을 소지하신 분께서는 예약 없이 바로 이용이 가능하십니다. 물론 동반하신분도 이용 가능하십니다. 정말 실례했습니다. 바로 안내해 드리지요.”

 

히토미의 신분증을 확인한 직원은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한 뒤 한쪽 팔로 가게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와 히토미는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직원을 따라 자리를 안내 받았다.

 

마음에 드시는 메뉴가 정해지시면 불러주십시오.”

 

우리는 직원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VIP회원과 본토인 전용 홀이라는 2층으로 안내 받았다. 2층은 1층과 달리 적은 수의 테이블들이 널찍하게 떨어져있어 훨씬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1층과는 한눈에 비교되는 더욱 고급스러운 장식들과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곳곳에 배치된 직원들은 손님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고 적혀 있는 것 인지 전혀 모르겠다!’

 

메뉴판을 집어 들고 이것저것 읽어보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가게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전무 한 내가 제대로 된 주문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나를 쳐다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따가운데 주문까지 제대로 못하면 무슨 망신인가.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창피하지만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고개를 들어 바라본, 일말의 희망이었던 그녀는 나와 같은 표정을 한 채 메뉴판을 꼭 쥐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하하.”

하하.”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서로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설마 했지만 그녀도 레스토랑이 처음이라니. 결국 우리는 직원의 도움을 받고서야 어찌어찌 코스요리 주문을 마칠 수 있었다. 민망해진 우리가 대화를 다시 시작 할 수 있었던 것은 요리 중 첫 번째인 스프가 나오고 난 후에서였다.

 

히토미씨라면 이런 곳에 자주 와본 적이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의외네요.”

, 그런가요?”

 

아차, 조금 실례인가.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전혀 기회가 없었거든요. 부모님께서 양식을 별로 안 좋아하셔서 가족끼리 와볼 기회도 없었고, 학부생 때는 학업에 정신이 없어서....... 그래서 한번 쯤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해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나중에 혹시라도 애인이 생겨서 데이트를 할 때 경험이 없어 허둥댈 생각을 하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그녀는 약간 빨개진 얼굴로 혀를 살짝 내밀며 말했다.

 

, 이렇게 말하니 왠지 토우마씨를 이용한 것 같은 느낌이네요.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애인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한번쯤은 와 봤어야 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서로 쌤쌤이네요!”

 

안심한 듯 활짝 웃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오늘 따라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그락-

 

우리가 주문한 런치 코스 요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속도로 계속 내어져 왔다. 우리는 새로운 코스가 나올 때 마다 먹는 방법이나 모양, 맛에 대해 품평하며 즐겁게 이야기했고 딱딱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져갔다. 때문에 나는 줄곧 궁금해 왔던 것을 어렵지 않게 물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히토미씨는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건가요?”

 

나의 질문을 들은 그녀는 잠시 멈칫 하더니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하는 일과 반도에 대해 동경했었거든요.”

 

그녀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반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공안경찰이셨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잘 계시지는 못했지만 집에 돌아올 때마다 반도의 이야기나 자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곤 하셨어요. 나쁜 사람들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아버지는 제 히어로 이셨어요.”

나쁜 사람들이라면.”

분리 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여러 가지 명칭 들이 있지만, 스스로 이야기 하는 바로는 독립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것 이었지요.”

 

나는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내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히토미씨도 그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의 질문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조금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너무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인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건 간에 독립단체, 아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공안을 위협하는 범법자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한 질문은 그녀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는 것 이었다.

 

그랬었지요.”

그렇군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분명 히토미의 대답은 과거형이었다.

 

한때는 굉장히 미웠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에서 그 사람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악당들이었거든요. 연일 벌어지는 사건에 항상 불안에 떨어야 하는 반도의 사람들이 불쌍했고 도와주고 싶었어요. 반도가 평화로워지면 아버지도 더 이상 집을 떠나 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어린 마음도 있었지요.”

 

그녀는 약간 부끄러운 이야기를 한다는 듯이 말 했다.

 

그 때부터 저는 공안경찰을 꿈으로 가지게 되었던 거죠. 하지만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이나 언론들이 떠드는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정의의 편이셨어요. 하지만 반도의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꿈에 부풀어 올랐던 학창시절의 저는 반도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미국과 중국의 문헌은 물론이고 러시아나 조선시대 때 남겨진 기록까지. 물론 처음에는 적을 알아야 제대로 이길 수 있다는 치기 어린 생각 이었지만요.”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외국의 입장에서 본 반도에 대한 시선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지금까지 알아왔던 상식들과 전혀 반대되는 내용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반도에 대한 차별의 현실도요. 고리고 고민했지요. 어떻게 해야 정말로 반도의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을지.”

고민의 결과는......”

물론 보다시피 공안경찰이 되었어요. 제가 내린 결론에서 결국 그 사람들은....... 독립을 원했던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나는 반박 할 수 없었다.

 

벌써 반도와 일본은 하나가 된지 100년을 넘겼고, 대다수의 반도인들은 더 이상 독립을 원하지 않게 되었어요. 아니, 그들의 머릿속에서 독립이라는 글자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부여받지 않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일본 국민이 될 수도 없었어요. 일본인들에 의한 차별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그 차별을 불러온 것은.”

독립단체라고 생각하는 군요,”

맞아요. 근 현대, 아니,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독립활동들은 매스컴을 통해 일본사람들에게 다수의 반도인들은 여전히 독립을 원하며 일본에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본에게서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 있는 이중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어요.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어온 이런 상황은 뿌리 깊은 차별을 만들어 냈지요.”

 

새로운 요리가 테이블에 놓여 졌지만 우리는 식기를 들 생각도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반도인들이 더 이상 차별받지 않고 행복해 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제가 선택한 이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에요.”

 

어쩌면 아라세카이 히토미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우리가 정말로 일본에 녹아든다면, 정말로 진정한 일본인이 되어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독립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반도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많은 반도인들이 정말로 독립을 원한다고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보편적 이념은 다수결의 원리에 따른 민주주의에요. 라고 한다면 대답이 될까요?”

 

그녀는 확실한 대답을 하기에는 자신의 입장에서 조금 곤란한 질문이라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반도인들을 위해 반도의 독립활동을 하는 사람과 싸운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해할 수 없지 않은 이야기에 나는 입맛이 씁쓸해져 왔다.

 

지금 저를 조금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하긴, 공안경찰이 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뒀으니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기는 하네요.”

? 히토미씨는 이전에 다른 일을 했었나요?”

대학교까지는 아버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와세다 법대를 졸업하고 운 좋게 처음 치른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에 임용 됐었어요. 공안경찰 특채 공고를 보고 곧바로 뛰쳐나왔지만! 그땐 정말 아버지한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쿡쿡.”

 

말도 안 되는 엘리트였잖아! 나는 내 앞에서 천연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가 다른 의미로 새삼 다시 보였다.

 

저도 토우마씨 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요.”

, , 무엇이든지요.”

어젯밤, 함께 있던 그 여성과 아는 관계인가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등줄기에 찌릿한 것이 스쳐지나 가는 느낌을 느꼈다.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마땅한 대답을 생각해 놓고 있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단신으로 폭력배들을 몇 명이나 쓰러뜨렸다고 하더군요. 증언으로는 토우마씨와 아는 관계인 것 같다고 하던데.”

 

나는 일단 최대한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어설픈 거짓말을 해 봤자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며칠 전 사소한 오해가 생겨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그 여자애의 이름도 모르지만요. 어제는 어쩌다보니 같이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면 연락처나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있나요?”

연락처는 없지만, 일하는 곳에서 가끔 마주칩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다만 조금 신경 쓰인다고 할까. 솔직히 건장한 남자들을 순식간에 때려눕히는 소녀라니 흔치않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아니에요. 잊어주세요. 요리가 식어버렸네요. 다시 데워달라고 하죠.”

 

히토미가 그 여자애에 대해 물어 본 것은 생각보다 싱거운 내용이었다. 예정 외였던 이 레스토랑에 오지 않았었더라면 히토미와의 대화는 편의점 앞에서 금방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음 한 쪽 구석에서 이 대접의 대가로 뭔가 중요한 정보라도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담감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요리는 다시 데워져 나왔고 우리는 그 뒤로 별다른 이야기 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토우마씨, 혹시 잠시 동안 저와 일해 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윽고 디저트인 케이크 조각이 우리 앞에 놓여 졌을 때 먼저 입을 뗀 것은 히토미였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지 못했던 그녀의 제안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재차 되물었다.

 

너무 말이 거창했나요. 그렇다면 조금 말을 바꾸어 보도록 하죠. 제 부탁을 조금 들어 주실 수 있나요? 사례는 확실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그녀는 다시 밝은 표정을 되찾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 직급에서는 현지 정보원을 고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제 정보원이 되 주셨으면 합니다.”

정보원이요?”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니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요. 그저 토우마씨가 알고 있는 것, 알게 된 것을 저에게 이야기 해 주시면 되는 일이니까요. 활동비 명목으로 소정의 사례금도 지급되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그보다 어째서 저를?”

어젯밤 같이 있었던 그 여성분에 대해 알아봐주셨으면 해요. 물론 정보를 모으려면 친분을 쌓거나 해야 하는 과정도 필요하니 단시간 내에 성과를 내야한다는 부담을 가지실 필요도 없고요.”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독립군 다음은 공안인가. 내 인생에서 두 번은 없을 인기구만.

 

공안 쪽에서 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수사인가요?”

개인적인 수사 활동입니다. 따라서 토우마씨는 제 직속 정보원으로 고용 되는 것이고요. 따라서 타 공안요원이나 공안청과 직접적으로 연관될 일은 없기 때문에 편하실 거 에요.”

그렇군요.”

 

나는 복잡해진 머릿속 때문에 빠른 속도로 얼굴이 굳어져갔다. 하지만 나는 표정을 관리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 제 직속이 싫으시다.......면 정보팀 쪽 소속으로 돌려드릴 수 없는 것은 아닌데.......”

? 아뇨! 그런 것은 아니에요!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요.”

, 그런 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이든 들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나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 역시 지금 당장 정하시기에는 조금 경황이 없으실 지도 모르겠네요. 급한 것은 아니니 잘 생각해보고 결정되면 말해 주셔도 괜찮아요.”

, . 그럼......”

 

마지막 케이크 조각까지 없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안내 받은 카운터에서 내 월급의 절반이 넘는 돈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입을 감추려 황급히 하품 하는 척을 해야 했다. 가게를 나온 나는 히토미에게 혼자 돌아 갈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반강제적 수준으로 차에 태워져 다시 동네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쓰레기가 나뒹굴러 다니는 지저분한 길거리, 지어진지 몇 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허름한 건물들, 여기저기 얽혀 마치 거미줄 같이 늘어져 있는 전깃줄, 생기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부산한 폐지 줍는 노인. 아까까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에 나는 부유한 외국에 있다가 귀국한 사람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전에 드렸던 명함, 아직 가지고 계시죠? 마음이 정해지시면 그 번호로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 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럼.”

 

아까 만났었던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워 나를 내려 준 그녀는 다시 차를 몰아 어느새 저 멀리 사라졌다. 내 시야에서 그녀의 차가 사라진 후에도 나는 잠시 동안 그대로 서서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았다.

'휴간 > 21세기 경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재공지  (0) 2015.10.10
21세기 경성 (8)  (0) 2015.09.26
21세기 경성 (7)  (0) 2015.09.19
휴재 공지  (0) 2015.09.12
21세기 경성 (6)  (0) 2015.09.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