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음향을 자랑하는 아람음악당

 클래식 음악이 현대의 다른 장르의 음악과 크게 다른점 중 하나는 바로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한 전기확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악기에서 나오는 자연음에 인위적인 조정을 가하지 않기 때문에 악기가 연주되는 음악당의 음향적인 설계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가장 대표적인 음향적 요소로 음의 잔향시간이 적절한지를 따지고, 세세하게 살펴보아서 특정 음역대만이 지나치게 묻히거나 강조되지는 않는지, 음이 객석 전체로 잘 퍼지며 음영지역은 없는지 등을 고려하게 된다.


 이렇게 세심하게 설계된 음악당의 한가지 문제(?)라면, 이런 음악당에서는 오직 클래식 연주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의 음악에게 클래식 음악당의 잔향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 음향적 설계를 위해 형성된 음악당의 구조나 인테리어때문에 클래식을 제외한 다른 공연을 위한 연출이 불가능하다. 좁디좁은 국내 클래식시장에서 클래식 전용 음악당을 지어봤자 무대에 먼지만 쌓일것이 뻔하므로, 민간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문화회관에서는 그 절충안으로 다목적홀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다목적홀에서 아무리 우수한 흡음, 반사패널을 적절히 배치한다고 한들 공간의 형태부터 궤를 달리하는 클래식전용 음악당의 음향 퀄리티가 훨씬 훌륭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클래식 전용홀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것이 아니며 각 음악당마다 저마다의 특징이 있어서 잘 설계된 음악당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그렇지 않은 음악당(예를들어 세종문화회관이라든가, 세종문화회관이라든가, 세종문화회관이라든가)은 클래식 애호가들로부터 질타를 받게된다.

예를들어 겉만 번지르르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라든가...

 얼마 없는 국내 클래식전용 음악당중에서 가장 음향적 퀄리티가 좋은 곳, 그 곳이 바로 아람누리 아람음악당이다. 사실 가장 높은 인지도나 영향력이 있는 음악당은 예술의전당이겠지만, 예술의전당조차 음향에 관해선 아람음악당에 한 수 접어야 할 정도다. 아람음악당 홈페이지에 있는 소개글을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아람음악당은 1,449석의 객석과 최적의 음향을 전달하기 위한 직사각형(슈 박스 형식) 전용홀로 설계되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가장 적합하다는 이 직사각형 홀은 객석 전체가 로열석이라 할 만큼 은은하고, 고른 음향을 자랑한다. 때문에 아람음악당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연장으로, 무대, 객석, 음향, 조명, 연주자가 최고의 조건하에 함께 어우러져, 완벽한 공연을 만들어 낸다. 
 저 소개 한줄 한줄에 전혀 과장이 없다. 오히려 다른 음악당과 비교해보면 너무 겸손한 소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람음악당의 음향 퀄리티는 너무나도 우수하다. 피아니시모에서 객석 전체에 고르게 음이 퍼져나가고, 메조포르테에서 모든 악기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되며, 포르티시모에서 음이 전혀 포화되지 않고 묵직하게 음악당을 메운다. 게다가 조절가능한 흡음커튼이 벽에 설치되어 있어서 공연마다 맞춤형 음향조건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당이 하나의 완성된 공간을 추구하므로 연주자가 음악당의 특성에 맞춰서 연주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람음악당의 이러한 가변적인 음향시설은 클래식 음악당으로서 아주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람음악당의 음향 퀄리티가 국내 최고임은 이미 공인된 상태고, 세계에 내놔도 전혀 꿀릴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입지조건이나 인지도가 안 좋은 탓인지, 아람음악당의 우수한 음향 퀄리티에 비해 유치되고 있는 공연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빈약하다. 뭐 예술의전당을 제외하면 파리만 날리는것이 일반적인 문화회관의 현실이지만, 구립문화회관의 다목적홀에서 조차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열리는 마당에, 이렇게 완벽한 음악당에서 그런 굵직한 공연 한번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을 볼때마다 정말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클래식 기획사에 편지를 돌려서 아람음악당에다가도 좀 공연을 적극적으로 기획해 달라고 하고싶을 정도다.

국내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예술의전당

 언젠가 분명히 아람누리 아람음악당도 예술의전당만큼 흥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렇게 훌륭한 음악당을 계속 놀리고만 있어야 한다니, 너무나도 불합리한 일이 아닌가! 뭐 일단 이 깨알같이 작은 음악시장부터 좀 키워야겠지만 말이다.




연말이 다가오는 가운데, 여러 악단의 음악회도 송년음악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송년음악회라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음악회인데, 이때 프로그램으로 선택되는 단골손님이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하면 바로 송년음악회를 떠올릴정도로 둘의 상관관계가 매우 깊다. 사실 이러한 관습은 일본에서 시작된 것인데, 오늘날에는 아시아 클래식 음악계의 고유한 전통(?)으로 자리잡아 가고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가장 큰 특징은 널리 알려진 대로 4악장에 포함되어있는 합창이다. 특히 이 합창중에서도 클라이막스 부분은 아마 클래식 음악중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 아닌가싶다. 이 합창이 교향곡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굉장히 혁신적인 시도였다. 합창이 포함된 교향곡이 여럿 있는 지금에 와서야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싶겠지만, 무엇이든지 정해진 틀을 깨려는 최초의 시도는 굉장히 어렵다는 점에서, 이 교향곡은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사실 이 합창의 가사는 베토벤이 직접 쓴 것은 아니고, 시인 쉴러가 쓴 "환희의 송가"라는 송시를 인용한 것이다. 어린 베토벤이 살았던 당시에 이미 이 환희의 송가는 꽤 유명했고, 베토벤은 이 송시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고 전해진다. 


이쯤 되면 알 수 있겠지만 이 교향곡에 합창이, 그 중에서도 특별히 환희의 송가가 담겨있다는 것은 음악사적으로나 작품 자체의 해석적으로나 큰 의미가 있다. 특히 4악장의 초반부만 자세히 살펴보아도 베토벤이 이 환희의 송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가 바로 나타난다.


4악장의 서주는 1~3악장의 주제를 재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지난 악장을 되돌아 보고 난 뒤에 합창부분의 주요 주제가 제시된다. 이렇게 합창없이 진행되는 아주 아름다운 선율은 바리톤의 외침으로 중단된다. 

오 친구들이여, 이 선율이 아니오!

무엇이 아니란 말인가? 지금껏 1,2,3악장의 주제를 재현하고 새로운 4악장의 주제를 제시한 마당에, 바로 그것을 부정해버리다니! 이어지는 바리톤의 독창을 살펴보자.

좀더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좀더 환희에 찬 노래를!

그렇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만으로는 환희를 표현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환희의 송가가 시작된다.

환희여! 환희여!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찬란함이여, 낙원의 여인들이여...

이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의 멜로디가, 앞서 제시했다가 바리톤에 의해 부정당한 주제 선율과 똑같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즉 악기만으로는 부족했지만, 바로 그 위에 목소리를 더함으로서 완전해진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교향곡에 합창을 포함시킨 것은 단순히 새로운 시도를 하기위함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베토벤이 표현하고자 했던 환희는 이렇게 4악장의 합창으로 완성된다.


흔히 이 교향곡을 들을때 독일어 가사를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이지 이 교향곡의 감동을 반도 못느끼는 감상이라고 할수 있다. 이렇게 합창을 크게 강조했으니 그 가사에 베토벤의 메시지가 담겨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그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어디까지나 그것을 듣는 개인의 몫이다.


*41분7초부터 4악장이다.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의 클래식 음악을 비롯하여 작곡가와 지휘자, 악단, 연주홀 그리고 음악사 등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는 카테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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