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가 가장 훌륭한 피아노 협주곡을 하나 골라달라고 한다면, 나는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바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브람스가 첫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쓰고나서 무려 2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인 1881년, 그의 나이가 48세일때 비로소 발표된 곡이다. 이 곡이 작곡되던 시기에 그는 교향곡 3번, 바이올린 협주곡, 비극적 서곡을 비롯한 그의 걸작들을 함께 활발히 작곡하기도 했다. 이 곡의 초연은 브람스 자신에 의해 직접 이루어졌는데, 당시 청중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서 즉시 유럽 전역의 도시들에서 연주회가 이어졌다. 그 인기는 오늘날까지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이어져서 여전히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이 협주곡에서는 브람스의 다른 후기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농익은 예술적 성숙미를 느낄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서정적이고 밝은 기운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독주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하나가 되는듯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음악을 전개하는 모습은 그 어떤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 곡만의 특징이다. 악장의 구성도 일반적인 협주곡과는 달리 교향곡처럼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피아노 협주곡'이 아니라 '피아노 교향곡'을 듣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거대한 곡을 브람스는 자신의 친구에게 "작은 피아노 작품"이라며 소개했다는 것이다. 


  • 1악장은 호른 솔로와 피아노가 서로 대화하듯이 주제를 주고받으며 부드럽게 시작한다. 이 잔잔한 분위기는 피아노의 화려한 카덴차가 돌연 등장하면서 순간 깨지게 된다. 카덴차가 끝나고나서 본격적으로 제시되는 주제를 가지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빚어내는 깊은 울림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특히 종결부에서 등장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길고 화려한 피아노의 트레몰로가 인상적이다. 
  • 2악장은 낭만시대 교향곡에 일반적으로 포함되는 세도막형식의 스케르초 악장이다. 브람스는 이 악장에 대해 "한 줄기의 조그마한 스케르초"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당연히 그의 반어적인 농담이다. 폭풍과도 같이 화려하게 몰아치는 피아노의 질주는 중간 부분에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가, 반복부에서 훨씬 화려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 3악장은 첼로 독주가 돋보이는 잔잔하면서도 아주 아름다운 안단테 악장이다. 첼로 독주가 홀로 주제를 연주하고 나서 피아노가 천천히 등장해 첼로의 선율을 이어받아 발전시킨다. 한차례 기복을 거치고 난 뒤 다시 처음처럼 잔잔해진 분위기에서 첼로와 피아노가 함께 어우러지고, 피아노의 상승구와 함께 아름다운 막을 내린다.
  • 4악장은 여러 주제가 변칙적으로 등장하는 유쾌한 분위기의 악장이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다양한 멜로디를 주고받으면서 점차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밝은 결말을 향해 함께 나아간다.


사실 곡 자체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이 협주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게 필요한 테크닉과 소모되는 체력은 난곡으로 평가받는 다른 피아노곡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에게 요구되는 기량도 상당하며,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사이에 완벽한 호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전체적인 연주 난이도가 아주 높기 때문인지 이 곡의 명성이나 인기에 비해 실제로 연주회에서 접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이렇게 실황으로 듣기 힘들게 만들 정도로 높은 난이도가, 이 곡의 유일한 단점아닌 단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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