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크렌슨,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시작하기전 - 서론 읽기

서론을 지나치는건 정말 쉬운 일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론을 안읽죠. 어차피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길고 긴 본문에 수두룩하게 적혀있을 겁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서론을 읽을 필요를 못 느끼겠죠. 사실 공대생이라 그런 경향이 조금 더 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대 전공서적이라는게 으레 그렇듯, 서론은 커녕 본문에 있는 줄글조차 잘 안읽고, 중간 중간에 있는 공식 정도나 읽게 되죠.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작가의 입장에서 서론이라는 것은 독자와 만나는 첫 대면식입니다. 마치 소개팅의 첫 만남마냥, 아무리 숙련되고 익숙해져도 설레고 또 설레는 기회가 되는거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소개팅의 첫 만남에서 각종 호구조사가 이어지는 것처럼, 작가 역시 이 공간과 시간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어필할 기회를 가집니다. 적게는 2~3페이지, 많게는 10페이지, 어떤 변태는 가끔 서론으로 100페이지를 쓰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취존의 영역으로 모셔두고, 그 정도의 범위에서 작가는 마음껏 자기 작품을 어필하고 싶어하죠.

그래서 서론 읽기가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자기 작품을 어필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오가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겁니다. 갖가지 논증과 논리, 맥락과 비판들이 오고가며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빚어나갈 것입니다. 가끔은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 조금 논점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죠. 서론 읽기는 그 많은 들 중에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줍니다. 뭐가 주장이고 근거인지, 뭐가 논리이고 논증인지, 뭐가 핵심이고 뒷받침인지 구분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죠.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서문으로 읽기 1 - 대중의 정치 참여에 의지해온 역사

이 책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의 서문은 시민참여가 정치에서 중요했었음(과거형)을 지적하며 시작합니다. 전체 6페이지 정도되는 서문 중에서 이 파트는 두 문단 정도로 짧은데요, 중요한 문장을 다음과 같이 몇개 인용해보았습니다.

1)시민들은 서구가 세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할 수 있도록 국가에 행정력과 강제력 그리고 추출능력을 제공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2)시민들은 그 대신 법적 권리, 연금, 그리고 잘 알려진 바대로 투표권을 포함한 다양한 보상을 받았다.(중략)…3)정부가 평범한 시민의 지지와 협력에 의존했던 것은 대중의 정치 참여를 넓히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 본문 中

군인이 있어야 전쟁을 합니다. 군인을 뽑으려면 입대하려는 시민이 있어야죠. 군인들 먹여살릴 돈도 필요할겁니다. 그 돈 역시 시민들이 세금으로 냅니다. 그것이 바로 1)번 문장의 의미입니다. 전쟁이 대표적이지만, 국가가 하는 일이 커질수록 시민에게든 그 시민들이 내는 세금에게든 점점 더 의존할 수 밖에 없어집니다. 그리고 원래 힘이라는게 한번 맛보면 더 키우려고 하지 줄어들지 않습니다. 국가라고 그 욕심에 끝이 있을리 없죠.

그렇다고 국가가 한정된 숫자의 시민들에게 무작정 의존할 수 도 없는 것 아니겠어요? 2)번 문장은 국가가 시민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대신 무엇을 보상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원래 시민이라 불리는 계층은 일부 백인 남성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야할 일이 많아지면 시민도, 거둬야할 세금도 부족해집니다. 원래 시민이 아니었던 소외계층들 중에서도 군인을 뽑고, 세금을 거두고, 대신 그들이 원하는 투표권을 보장합니다. 여성도, 빈곤층도, 아스카파도, 레이파도 모두 평등하게 한표를 행사할 수 있는 보통선거의 원칙은 사실 이렇게 탄생한 것이죠.

짧지만 강력하게, 이 두 문단은 시민이 국가와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국가는 시민의 지지와 협력을 필요로 했고, 대중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얻어내고 정치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서문으로 읽기 2 -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민의 지지와 참여

앞선 이야기가 오늘날도 지속되는 이야기였다면, 이 책이 쓰였을리가 없겠죠. 이름부터가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인데, 안좋아지는 이야기를 쓰는 느낌이 나잖아요. 좋은 이야기가 먼저 나오면 뒤에는 안좋은 이야기가 따로 오게 되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죠. 갑자기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면 당황하지말고 다가올 불운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 없이도 군대를 모으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중략)정치 엘리트들이 대중의 정치 참여에 의지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중략)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새로운 통치 기술들이 대중을 사적 시민들의 집합으로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본문 中

원래 다 시민의 지지와 협력을 필요로 했던 일입니다. 근데 시민이 필요없어진 거에요. 시민에게 참여를 호소하고 지지와 협력을 부탁하지 않아도, 군인 잘 뽑고 세금 잘 걷고 정책 잘 시행합니다. 정치는 더 웃기죠. 모든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데, 시민이 필요가 없어요. 사실 우리도 당장 내가 사는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 국회의원들 알아서 잘 정치하고 다니잖아요?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참 답없는 현상이죠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경험은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점점 개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중략)평범한 미국인들은 시민에서 고객이라고 불리는 존재로 변해왔다. (중략) '고객들'은 집단으로 정치과정이나 통치 과정에 참여하도록 권유받지 않는,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개별 수혜자들이다. (중략)시민들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창조된 집단적 존재로,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다. (중략)고객은 시장에서 개인적 필요를 충족하려는 개별 구매자들...집단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집단 동원이 빠져 있으며...고객이 연방 정책의 내용과 집행에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작가는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국가(행정)과 정치가 시민의 지지와 협력을 얻기 위해서 발버둥치던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어 집단 이익(투표권, 법적 권리)등을 요구하죠.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가 시민들을 '시민'이 아니라 '고객'이라고 다루기 시작하고, 그것이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경험이 '집단적'이었던 과거에서 '개인적'으로 변해가는 현 실태입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투쟁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중략) 정부는 시민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시민들은 경제나 부양하고 방해되지 않게 얌전히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작가는 2000년 미 대선에서 일어난 플로리다 상황을 직접적으로 인용합니다. 투표는 대중의 정치 참여 중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투표와 관련된 문제에 일말의 대중적 정치 행위도 저항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후보조차 '이것은 여론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라고 단언합니다. 언론은 미국 민주주의가 성숙한 모습이라고 하지만, 작가는 다르게 진단합니다. 

국가는 시민의 지지와 협력을 필요로 했었고 시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였지만, 이제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으며 시민들 역시 정치 참여로부터 떠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서문을 통해 하고자 했던 말입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목차로 엿보는 그 의미와 주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라는 말은 결국 민주주의가 '대중'에 대한 이야기였다가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 작아져간다는 의미일겁니다. 그렇기에 '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 라는 제목을 1장에서 채택했겠지요. 사실 1장의 역할도 서문과 비슷할때가 많습니다. 본격적인 논증에 앞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설명하고 구체화시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뒤따라오는 이야기들은 1장에서 이야기한 논리를 증명하기 위한 부연설명들과 증거들입니다.

특히나 이 책은 현 상황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참여율, 정치 엘리트들과 시민과의 괴리, 민주주의의 여러 장치들이 그 원래 의의를 잃고 시민 없이도 작동되는 모습들에 대한 추적을 통해 왜 문제인가를 말하고 싶은 것일 겁니다. 뒤따라오는 장들의 제목들이 해결책 제시보다는 분석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것에서 그 의도를 엿볼 수 있지요.

이 많은 문제들이 우리 역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비록 미국의 현 실태에 대한 이야기일지언정 우리 역시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1장은 다음주에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좋은 꿈꾸시길 바라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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