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 

숫자로 보는 우승이 가지는 의미.

2013.12.01


K리그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오늘은 약간의 관심을 가졌을법 하다. 역대 어느 시즌이든 우승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적은 크게 없었을테지만, 이번 시즌만큼 우승 경쟁이 흥미진진한적도 많이 없었다. 특히나 K리그 출범 30년 이래 처음으로 우승 경쟁 팀이 결승전에서 만났다. 게다가 이기는 팀은 우승까지 할 수 있는 대진표로 말이다. K리그 마지막 시즌 경기중 가장 치열하고 관심이 모아질만 했던 경기였다.


처음에는 누가 이길지 예상조차 쉽지 않았다. 전문가들마저도 의견이 갈렸다. 최근 5연승을 하며 파죽지세로 우승을 향해 달려간 포항, 꾸준히 우승후보로서 김신욱의 활약으로 차분하게 1위에 올라갔던 울산. 어느 누가 이길지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울산의 홈이기에 홈 어드밴티지가 있었으나, 김신욱과 외국 용병들이 나오지 못했다.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그 뚜껑이 드디어 열렸다. 결과는 놀라울 따름이였다.


포항 스틸러스는 후반 인저리 타임에 김원일의 골로 역전 우승을 해냈다. 무승부만 해도 우승이였던 울산에겐 날벼락같은 일이였다. 두 팀의 희비가 엇갈리며 K리그는 새로운 스토리를 써내는데 성공했다. 두 팀의 대결은 '동해안 더비'라고도 불리는데 이제 역사가 깊고도 깊은 동해안 더비에 또 다른 스토리가 쓰여진것이다. 멋진 일이다. 


이제 우리는 우승자를 축하하는 일만 남았다. 그렇다면 이번 포항의 우승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6년


포항이 마지막으로 K리그 우승컵을 든 해는 2007년이다. 당시 리그 최종순위 5위였던 포항은 우승 플레이오프에서 극적인 승리를 하며 우승컵을 드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우승 플레이오프에 대한 논란이 있긴 했지만, 포항의 입장에선 기적같은 일이였다. 하지만 포항은 그 이후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며 매번 우승을 놓쳐왔다. 2010년을 제외하곤 계속 상위권에 랭크해 우승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그들이였기에 더욱 목말랐던 우승이였다.


리그순위 역대 최악의 해였던 2010년 이후, 포항은 황선홍을 감독으로 부임했다. 황선홍은 곧바로 팀을 3위권에 올려두며 우승 플에이오프에 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울산이였다. 동해안 더비의 상대인 울산과의 우승 4강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며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2012년부턴 리그 1위가 그대로 우승하는 제도로 바뀌고 애매한 순위로 우승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 포항이 우승함으로서 6년만에 우승컵을 들었다. 2011년 우승컵을 들지 못하게 방해했던 울산을 상대로 승리하며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1번째


포항 스틸러스는 K리그에서도 하나의 발자국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K리그 최초로 더블을 달성한것이다. 물론 진정한 최초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K리그에는 여러 생기고 없어진 컵대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FA컵과 리그에서 우승한 팀은 포항이 최초이다. 어느정도의 정통성을 따진다면 최초의 더블을 달성한 셈이다.


어느 리그에서도 더블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K리그처럼 재정이 열악한 리그는 더욱 그렇다. 더블 스쿼드가 갖추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포항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다할 영입도 하지 못하고 선수들을 지키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항은 놀라운 정신력과 투지로 더블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최초란 이름은 전혀 아깝지가 않은것이다.




0명


포항의 이번 우승이 더욱 갚진것은 0명이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이 0명이냐고? 바로 외국인 용병의 수다. 선천적으로 외국인 선수들은 체격과 축구 센스가 좋다고들 한다. K리그 용병의 역사를 쓰는 FC 서울의 데얀과 몰리나는 3연속 득점왕, 2연속 도움왕에 오르며 그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포항은 외국인 선수들을 내주기만 했고, 영입을 하지 못했다. 오로지 한국선수들로만 선수단을 꾸린것이였다.


처음에는 모든이들이 포항이 부진에 빠질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전문가들 마저 외국인 용병이 없는 포항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긴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포항은 오로지 한국인 선수들만으로 FA컵을 우승해냈다.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저력과 집중력으로 마지막 6연승까지 하며 더블까지 이루어냈다. 


황선대원군[각주:1]은 위대했다.




40%


" 포항의 힘은 유스로부터 나온다. " 황선홍 감독의 말이다. 이번시즌 포항은 재정악화로 외국인 용병은 커녕 제대로 된 영입도 잘하지 못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 선수들은 " 우리팀은 우승해선 안된다, 돈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 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포항은 굳이 영입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내에서도 탑클래스로 뽑히는 유스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였다.


40%. 무슨 숫자인지 궁금한가? 포항 1군내에 속해있는 포항 유소년 출신 선수 비율이다. 정확히는 40% 이상이다. 놀라운 수준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스들을 기용함으로서 조직력을 완성시킨 포항은 스틸타카라는 별명을 만들며 리그에서 대활약을 보여주었다. 스틸타카는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처럼 조직력을 중심에 두어 패스플레이로 경기를 이끌어나가며 만들어진 별명이였다.


그리고 이 40%의 선수들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146회


무슨 숫자인지 궁금해할것이다. 바로 이 숫자는 '동해안 더비'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 축구단이 K리그 출범 이후 만난 횟수이다. 포항은 울산을 상대로 146전 56승 45무 45패를 하며 우세한 전적을 보였다. 둘이 만난 횟수도 많은만큼 중요한 시기에 만날때도 많았다. 2011년 포항을 우승 플레이오프에서 떨어트리기도 했고, 2013년 포항의 무패행진을 깨트린것도 울산이였다. 


올해는 울산이 강세였다. 포항은 울산을 상대로 2무 1패를 하며 동해안 더비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이번시즌 울산은 홈에서 패배를 단 한번밖에 당하지 않았다. 김신욱과 하피냐 콤피가 없었지만 자신이 있던 울산이였다. 하지만 포항은 그런 울산을 상대로 후반 인저리 타임, 기적같은 골을 성공시키며 146회 동해안 더비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로서 울산과 포항의 동해안 더비는 또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며 더욱 멋있는 더비가 되는데 성공했다.




  1. 쇄국 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을 이용해 만든 별명. [본문으로]

K리그 클래식, 개인 수상은 누구의 품으로?

2013.11.30


벌써 K리그도 끝을 보인다. 이번 K리그 클래식 역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K리그팀인 FC 서울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까지 올라가며 한국축구의 위용을 알렸고, 마지막 라운드임에도 불구하고 K리그의 우승과 강등이 확정되지 않았다. 김남일, 설기현이 인천과 재계약을 못할것으로 알려졌고, 수원 삼성 역시 곽휘주와의 재계약 의사가 없어보인다. 이천수는 폭력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이야기들도 이제 추억이 될때다. 시즌의 끝이 다가온것이다. 이맘때쯤 되면 어느 선수가 어떠한 상을 받을지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K리그 클래식의 개인별 수상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감독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있는 득점왕과 도움왕 역시 개인수상이다. 그리고 K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를 뽑는 K리그 MVP, 그리고 어린 나이에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활약을 보여준 선수에게 주는 영플레이어 상. 마지막으로 팬들이 선정하는 '팬'타스틱 플레이어 상이 있다. 


역시나 올해도 치열했던 K리그 클래식. 과연 어느 누가 어떠한 상을 받게 될까.



K리그 최우수 감독상, 이번에도 리그 우승자의 손으로 들어가나.


김호곤 - K리그 37R 까지 1위, 38R 포항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 확정.

황선홍 - K리그 37R 까지 2위, 38R 울산전에서 승리하면 역전 우승, FA컵 우승. < 유력 >

최용수 - K리그 37R 까지 4위,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어느 누가 받을지 예측이 쉽지 않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K리그 최우수 감독상은 팀을 우승시킨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런 면에서 사실상 K리그 최우수 감독상은 김호곤과 황선홍, 둘중 한명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 K리그 38 Round 가 어느 팀이 K리그에서 우승하냐와 동시에 최우수 감독상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K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기 힘든 일정에서도, 아시아 챔피언스 티켓을 얻을 수 있는 등수까지 올라온것은 놀라운 일이기에 후보로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김호곤은 역시 철퇴축구로 울산을 차근차근 우승으로 이끌며 선두를 지켜나갔다. 작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AFC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대륙 대회를 병행하는 탓에 힘든 일정으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내지 못하며, 이번 시즌 리그에 올인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우승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김호곤의 리그우승은 거의 기정사실화되가고 있다. 이번 시즌 김호곤은 포항과 3전 1승 2무로 더 좋은 성적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김호곤 역시 아직 K리그 최우수 감독상은 받아본적이 없기에 타이틀에 탐낼만 하고, 대체적으로 우승한 감독이 받아왔기에 우승한다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황선홍은 이번시즌 외국인 용병없이 시즌을 치루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모두가 이번시즌 포항은 부진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황선홍 감독은 그것을 비웃듯 FA컵 우승, 리그 2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인 울산과의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역전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한다. 더블을 한다면 무조건 최우수 감독상은 황선홍의 몫이겠지만, 문제는 울산과의 상대전적이 좋지 못하단 점이다. 하지만 최근 5연승으로 파죽지세하고 있는 포항이라면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리그 준우승만 하더라도 FA컵에서 우승했기에 김호곤과 다툴만하다.


김호곤의 제자이기도 한 최용수는 작년 김호곤이 받았던 AFC 올해의 감독상을, 올해 본인이 수상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준우승이라는 값진 순위, 그리고 포항이 FA컵 우승과 리그 2위를 한탓에, 4위까지 내려온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까지 따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작년에 이미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해봤던 최용수이기에 아마 이번에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시상식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K리그 자체 성적만으로 최용수가 그렇게 뛰어난 성적을 거둔것은 아니기에 최용수쪽으로는 그다지 힘이 실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김호곤과 황선홍의 대결이지만, 나는 황선홍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싶다. 외국인 용병없이 훌륭하게 팀을 이끌어냈고, FA컵 우승과 리그 준우승(노력 여하에 따라서 우승까지)이라는 기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대단하다. 누가 웃게 될지는 38R 가 되봐야 알겠지만, 나는 황선홍에게 손을 들어주겠다.




K리그 득점왕, 데얀의 3연속 득점왕을 토종 공격수 김신욱이 막을 수 있을까.


김신욱 - 36경기 출전, 19골 ( 경기당 득점 0.53 ) 

데얀 - 28경기 출전, 18골 ( 경기당 득점 0.64 ) < 유력 >

페드로 - 29경기 출전, 17골 ( 경기당 득점 0.59 )


K리그 득점왕의 최근 판도는 데얀과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데얀이 FC 서울에 이적한 이후, 2011년과 2012년 연속 득점왕을 했다. 경기당 득점력도 엄청났다. 2011년엔 경기당 0.79, 2012년엔 경기당 0.74 골이였다. 특히 지난시즌 31골을 넣으며, 김도훈의 28골 기록을 깨고 새로운 시즌 최다득점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김신욱이 화려한 변신을 하며 19골을 넣어 선두 1위를 지키고 있다. 그에 비해 데얀은 아챔[각주:1]과 병행해야 되기에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올시즌 K리그에 온 페드로 역시 초기에 많은 득점을 했지만, 일본 팀으로 이적을 해버렸다. 결과적으로 김신욱과 데얀의 대결이다.


김신욱은 이번시즌 36경기라는 경이로운 출전숫자를 보였다. 무려 리그 전경기에 다 뛰는 강철체력을 보여주며 19골로 득점 선두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매년 골 수가 늘어나는 김신욱이기에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하지만 김신욱은 최근 부상을 당하며 골 득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지어 경고 누적으로 포항전에서도 결장할것이기에 19골에서 더이상 골수를 높일 수 없다. 김신욱에겐 어찌보면 악재인 셈이다. 


그에 비해 데얀은 시즌 막판에 득점포를 대가동했다. 특히나 전북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하며 득점왕 경쟁을 알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마지막 라운드인 38R 의 상대가 전북. 이번시즌 전북과의 3번의 경기에서 4골을 넣은 데얀이기에 이번에도 득점을 할 수 있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데얀의 입장에선 단 한골만 넣으면 출전 경기수가 적기에 득점왕에 오른다. 게다가 최근 골감각이 제대로 물올랐다. 이번 시즌 득점왕 역시 데얀이 될것이라고밖에 예상할 수 없다.


페드로는 이번 시즌 제주에 영입되면서 돌풍을 일으킨 놀라운 공격수다. 하지만 하위 스플릿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팀의 리빌딩을 이유로 다른 선수들을 공격수에 써보며 상대적으로 적은 경기에 출전했고 마지막에 부상까지 겹치고나서 일본팀인 고베로 이적했다. 득점 순위 3위지만 득점왕을 할 수 없다.


나는 데얀이 득점왕 수상을 할것이라고 본다. 데얀의 최근 물오른 득점감각을 막을 수 없어보인다. 김신욱은 더이상 골을 늘릴 수 조차 없다. 최근 3경기 6골의 주인공인 데얀은 K리그 최초로 3연속 득점왕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K리그 도움왕, 몰리나일까 레오나르도일까. 전북 VS 서울에서 갈린다.


몰리나 - 34경기 출전, 13도움 ( 경기당 도움 0.38 ) < 유력 >

레오나르도 - 36경기 출전, 13도움 ( 경기당 도움 0.36 )

홍철 - 33경기 출전, 10도움 ( 경기당 도움 0.30 )


K리그의 도움왕은 사실상 몰리나와 레오나르도의 맞대결이라고 볼 수 있는데, 놀랍게도 38 Round 경기가 전북 대 서울이다. 즉 이 경기에서 득점왕도 모자라 도움왕의 판도까지 드러나는것이다. 득점왕과 도움왕이 38 Round 한 경기에 걸려있으니 한번쯤 보는걸 추천한다. 이미 몰리나는 지난시즌 19도움으로 도움왕에 올랐고, 2연패를 노리고 있지만 최근 기세가 주춤하다. 그에 비해 레오나르도는 최근 기세도 좋다. 얼마전엔 2도움까지 올리며 몰리나를 따라왔다. 홍철은 시즌초엔 기세가 무서웠지만, 중후반 들어 떨어진 체력탓인지 많이 부진하다. 수원의 부진이 홍철의 부진과도 연결되어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적은 경기에 출전한 몰리나쪽으로 추가 기울어져있다.


몰리나는 데얀과 함께 FC 서울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약간 부진하다는 평을 받으며 도움을 못세운지도 꽤나 되어버렸다. 마지막 도움이 8월 10일이니 알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몰리나가 도움왕에서 밀려날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부진한데도 불구하고 이미 20개가 넘는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을 정도로, 기본적인 기량이 좋고 최근 전북전에서 득점까지 넣었다. 2연속 도움왕이 유력하다.


레오나르도 역시 지난시즌 전북으로 이적하며 대활약하고있다. 특히나 얼마전에 있었던 인천전에서 2도움을 올리며 20개의 공격포인트 달성에 성공하며 도움왕 랭킹 2위로 올라왔다. 득점왕과 달리 도움은 기록하기가 어렵다. 골키퍼부터 같은 공격수까지 어디서 나올지 모르기때문이다. 그렇기에 전북 대 서울전에서 전북이 이기더라도 레오나르도가 도움을 세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한 레오나르도의 도움왕 수상이 힘들어보인다.


홍철도 서정원 감독아래 풀백에서 윙으로 전진을 시도했다. 왼쪽 풀백에서는 화려한 오버래핑과 수비능력을 보여주었고, 윙쪽으로 올라가고나선 날카로운 공격감각으로 두자리수 도움을 기록했다. 하지만 염기훈이 오고나서 익숙치 않은 오른쪽 풀백을 맡으며 갑자기 부진에 빠졌다. 최근 다시 왼쪽 풀백으로 나오며 제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이제 윙이 아닌 풀백쪽으로 이동한 홍철은 3개 이상의 도움을 세울 수 있을리가 없다.


결과적으로는 몰리나쪽이 유리하다. 도움은 경기마다 잘 터지지 않고, 적은 경기에 출장한 몰리나쪽에 수상을 두고있다. 몰리나의 2연속 도움왕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영예의 MVP는 이번에도 공격수 품으로?


김신욱 - 36경기 출전, 19골 6도움. 공격수 < 유력 >

이명주 - 33경기 출전, 7골 4도움. 미드필더 

하대성 - 28경기 출전, 3골 2도움. 미드필더


최우수선수상은 대체로 공격수에게 돌아갔다. 2008년 이운재가 최우수선수를 시상한 이후로 4년연속 공격수가 이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유력한 후보는 공격수인 김신욱이다. 19골 6도움으로 25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이는 올해 K리그 최다수치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상대도 만만치 않다. 지난 시즌 신인상을 수상한 이명주는 이번시즌 최우수선수를 노린다. 7골 4도움으로 기록도 좋고 팀 역시 울산과의 경기여하에 따라 우승할 수 있다. 하대성은 AFC 챔피언스 리그를 병행하며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팀의 순위와 개인 스텟 둘다 타 후보에게 밀려 조금은 뒤쪽에 있는 상태다.


김신욱은 25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이번 최우수선수가 유력하다. 팀도 우승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번 최우수선수는 큰 이변이 없는한 김신욱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공격수가 5년연속 MVP 를 먹게 되는 셈이다. 다만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서 출전할 수 없는것은 김신욱에게는 아쉬울것이다. 자신의 최우수선수 라이벌 후보와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면 사실상 기정사실이 되기때문에 아쉬울 따름이다.


이명주는 지난시즌 신인왕 출신이라곤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포항을 2위로 올려놓았다. 데뷔 2년만에 최우수선수 후보에 오른것은 K리그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다. 미친듯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 엄청난 기여를 해낸 이명주는 김신욱에 비해 최우수선수에서 약간 밀려나있는것이 정설이지만, 기회는 충분히 있다. 바로 마지막 라운드다. 울산과의 경기에서 포항을 승리로 이끌며 포항을 우승하게 만든다면 이명주의 최우수선수 수상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명주 입장에서는 마지막 라운드에 모든 사활을 걸어야한다.


하대성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대활약하며, AFC 최우수선수 후보에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수상받지는 못했다. 리그에서도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2골 3도움으로 준수한 활약을 했다. 하지만 시즌이 계속되면서 최용수의 노로테이션 정책으로 혹사를 받으며 중후반기에 지친기색이 보였던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울이 AFC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오를 수 있었던것은 하대성의 역할이 크지만, 리그에서의 활약은 크게 좋지 않은만큼 이 상에서 가장 멀어보인다.


정설은 김신욱이다. 25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최우수선수로서 수상자격이 충분하고, 팀 역시 포항과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다. 하지만 이명주가 수원을 함락시키는 슛을 쐈듯, 울산을 함락시키는 슈팅으로 포항을 역전우승시킨다면 K리그 2번째로 신인왕-MVP 를 받는 영광을 누릴것이다.




영 플레이어, 이번에도 포항의 손으로 갈까.


고무열 - 33경기 출전, 8골 5도움 < 유력 >

윤일록 - 28경기 출전, 2골 

한교원 - 35경기 출전, 6골 2도움


이번 시즌부터 신인상이 없어지고, 23 세 이하 선수들에게 수상하는 영 플레이어 상이 이번에 새로 생기게 되었다. 지난 시즌 데뷔한 이명주가 마지막 신인상의 주인공이 되고, 영 플레이어의 첫 스타트를 끊을 주인공은 누가 될것인지 궁금하다. 유력한 후보는 이명주와 같은 팀인 고무열이다. 33경기에 출전해 13개의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주전으로 활약했고 팀 순위 역시 2위에 FA컵 우승까지 이루었다. 윤일록은 경남에서 서울로 이적한뒤 28경기를 뛰었지만 개인기록은 조금 아쉬운 2골이다. 한교원은 인천의 희망으로 6골 2도움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수상은 팀성적과 개인성적 둘다 탑인 고무열쪽으로 굳혀지는 추세다.


먼저 고무열은 2년전 가장 유력한 신인상 후보였지만 광주 FC 의 이승기에게 밀려 신인상을 수상받지 못했다. 그런 고무열에게 기회가 찾아온것이다. 공격 포인트 역시 역대 시즌중 가장 높고 후보들보다 훨씬 더 좋은 위치에 있다. 팀 성적 역시 호재다. 윤일록과 한교원보다 훨씬 높은 리그 준우승, 게다가 노력 여하에 우승까지도 가능하다. 컵대회인 FA 컵도 우승하며 더블을 노리고 있다. 사실상 고무열이 수상받는다고밖에 볼 수 없다. 


윤일록은 이번시즌 서울로 이적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게다가 홍명보호에서도 골을 선보이며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고무열보다 개인 스텟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리그에서 28경기 출전 2골에 그쳤다. 아무리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어도, 포지션을 고려해볼때 리그에서의 성적은 영 플레이어를 받기 힘들어보인다.


한교원은 인천 유스의 작품중 하나다. 특히나 이번시즌 6골 2도움으로 본인의 밥값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인천의 재정난으로 팀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교원은 개인스텟은 고무열과 크게 차이가 없을정도로 훌륭하지만 팀 성적이 발목을 잡는다. 상위 스플릿에서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컵대회에서 두각을 보인것도 아니기에 한교원 역시 수상에서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영 플레이어는 고무열이 가져가는 추세다. 포항은 이로서 2연속 신인상을 가져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포항의 유스 시스템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고무열 역시 2년전 놓쳤던 신인상을 이제야 가져올 수 있다는점에서 큰 동기부여가 될것이다.




'팬'타스틱 플레이어, 가장 사랑을 받는 선수는 누구?


데얀 - 중간집계 1위 (1817 점) < 유력 >

김신욱 - 중간집계 2위 (1680 점)

하대성 - 중간집계 3위 (1173 점)


2009년부터 만들어진 '팬'타스틱 플레이어는 K리그 팬들이 투표해서 뽑는 상이다. 역대 수상자로는 이동국(2회), 구자철, 데얀(이하 1회)이다. 뭐 큰 명예가 있다기보다 K리그 인기투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주로 공격수 포지션쪽으로 표가 쏠린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 많은 골을 넣으며 눈에 가장 자주 띄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력한 1위 후보는 지난 시즌 '팬'타스틱 플레이어를 수상한 데얀이다. 그 뒤로 김신욱이 큰 차이 없이 따라가고 있고, 이후 약간의 차이를 두며 하대성이 따라가고 있는 추세다.


4위인 김승규부터는 379점으로 급격하게 떨어지므로 사실상 저 세명중 한명이 '팬'타스틱 플레이어로 당선될것이다.하지만 FC 서울은 데얀과 하대성으로 표가 나뉘고 있는만큼 울산의 김신욱이 따라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상만큼은 누가 받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축하해주고 웃어줄 수 있는 상이기에 세세하게 선수들의 이번 기록을 파해쳐보지는 않겠다. 뭐 사실 위 세명은 각각 다른 개인 수상부분에서 설명되기도 했다.


'팬'타스틱 플레이어는 12월 1일 밤 12시를 기점을 투표가 종료되므로 오늘 K리그 홈페이지 ( www.kleague.com ) 클럽 뉴스 아래쪽 배너에서 투표해보는것도 좋다. 데얀의 2연속 '팬'타스틱 플레이어 수상일지, 김신욱이나 하대성의 새로운 등장일지 궁금해진다.





  1.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본문으로]


대한민국 스트라이커 계보, 최순호부터 박주영까지.

2013.07.05


(1) 최순호, 황선홍, 그들이 달려온 길.


최강희 감독이 월드컵 본선에 팀을 올려놓고 사임한지 벌써 한달이 지났고, 홍명보호가 지난 동아시아컵에서 호주전을 기점으로 출항한뒤로 홍명보호가 2번째 경기를 치루었다. 최강희 감독의 마지막 월드컵 예선 3경기부터 홍명보호 2경기까지 찾아오는 5경기동안의 득점력 부재는 한국 스트라이커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한다. 


예전부터 한국의 득점력 부재는 항상 있어왔던 일이고, 그 점을 이란주먹감자년이 비꼬는 용도로 사용할 정도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스트라이커의 계보가 끝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매년 한두명의 스트라이커가 독보적인 시즌을 펼치며 득점력부재의 한국을 구출해왔다. 그러나 스트라이커 계보가 박주영 이후로 끊겨버린 이후, 어떠한 스트라이커도 그 계보에 들 실력은 보이지 않고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대한민국의 득점력부재를 구출하고, 국가대표에서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어왔던 선수들은 누굴까. 대체로 많은 논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 이회택 - 차범근 - 최순호 - 황선홍 - 안정환(or 최용수) - 이동국(or 조재진) - 박주영 " 라인으로 보고 있다. 가장 논쟁이 되는 선수는 이동국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에 대해선 그 선수의 파트 부분에서 이야기하도록 해보자.


우선 내가 생각하는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의 계보는 이회택 - 차범근 - 최순호 - 황선홍 - 안정환 - 이동국 - 박주영 라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선수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싶다. 여태까지 대한민국을 위해 투철하게 뛰어왔으며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은 비난에 시달려야했던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들의 이야기들을 적어보겠다. 그러나 이회택같은 경우 자료도 많이 없고, 본인이 잘 모르는 세대이므로 제외하도록 하고, 차범근이야 역대 스페셜 등등으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니 최순호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1. 최순호(1980~1990)




" 키가 큰 장신 공격수는 대체로 둔하고 창조성이 없다. 그러나 최순호는 그러한 개념을 깨트렸다. "


A매치 95경기 출전, 30골. 한국 스트라이커로서 차범근과 같이 한 획을 그은 전설의 공격수다. 현재 U-20 월드컵에서 김현이라는 유망주가 한국의 즐라탄과 유사하다며 그 가능성을 보고 있는데, 진정한 한국의 즐라탄은 바로 최순호가 아니였을까 싶다. 185cm 라는 엄청난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뛰어났으며, 기술과 축구지능, 테크닉까지 어느하나 부족하지 않았던 최순호는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빛나지 못한 케이스가 아닐까싶다.차범근개객기


역대 한국 최고의 축구선수인 차범근 아래 가려진 최순호의 능력이 다시 재조명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당시 최순호는 세컨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본인이 결정지을 수 있는 뛰어난 선수였고, 신체조건이 좋아 몸싸움도 외국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벤투스와 인터밀란등의 명문구단들이 몇년간 끈질기게 최순호를 영입하려 했지만, 실패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더불어 최순호는 A매치 승률이 차범근에 이어 2위인데, 사실 차범근이 아시아권을 주로 학살했단것만을 생각한다면, 이는 놀라운 기록이다. 특히나 차범근이 있을때 한번도 꺽지못한 호주를 상대로 무패를 유지했으며, 친선경기에서 비아시아권 팀을 상대로도 꽤나 승리를 거둔것으로 ㅇ


최순호는 포항제철 축구단(현 포항 스틸러스)과 럭키금성 황소(현 FC서울그리고 배신의 서울, 이 당시에는 충청이 연고지)에서만 뛰면서, 1980-1986년까지 전성기로서 활약한 선수인데, 사실 그는 소속팀에서의 활약보다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이 더 뛰어나다. 최순호는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4년간 55경기, 24골을 터트리며 전성기를 맞았지만, 럭키금성 황소로 이적한 뒤에는 28경기에 뛰어 2골을 기록하였다. 물론 세컨드 스트라이커로서 공격의 창조적인 모습을 불어넣었기에 좋은 모습을 보인것은 사실이다. 그이후 다시 포항제철 축구단으로 재입단하여 공격형 미드필더로, 16경기 0골을 기록하며 사실상 선수생활을 종결지었으며, 그 이후 지도자 생활을 위해 프랑스로 넘어가 프랑스 2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골은 전부 리그골 기준)


최순호가 본격적으로 국가대표로서의 이름을 떨친때는 1980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였다.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 차범근의 차출불가로 대체 인원으로 뽑힌 최순호는 인도네시아와 타이를 상대로 각각 한골씩 기록하며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 이후 차범근을 이을 계보 스트라이커로서의 이름을 올리며 유망주의 등장을 알렸다.


그리고 1980년에 열린 AFC 아시안컵에서 본선전 4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당시 최순호는 차범근과 버금가는 활약을 펼치며 한국과 아시아를 놀라게 하였다. 당시의 경기기록은 다음과 같다.


1980년 9월 16일, 말레이시아 0 VS 1 대한민국 - 최순호 1골

1980년 9월 19일, 카타르 0 VS 2 대한민국- 최순호 1골, 이정일 1골

1980년 9월 21일, 쿠웨이트 0 VS 3 대한민국 - 최순호 2골, 손태준 1골

1980년 9월 24일, 아랍에미리트 1 VS 4 대한민국 - 최순호 3골(해트트릭), 정해원 1골


무려 본선 4경기에서 전부 골을 기록하고, 총 7골을 기록한 최순호는 말그대로 센세이션이였다. 최순호는 그 이후 결승 토너먼트 2경기(4강전, 결승전)에서도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득점왕에 오른다. 이때가 고작 19살이였다.


그 이후에도 FIFA가 주관하는 U-20 월드컵에서 1981년, 빗장수비의 U-20 이탈리아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이탈리아를 놀라게 했고, 본 월드컵 예선에서도 타이를 상대로 2골을 넣었고, 좋은 위치선정으로 공격을 도우며 한국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 월드컵 예선에서 쿠웨이트에게 패배했고, 결국 예선전에서 전승을 한 쿠웨이트가 올라가며 안타깝게도 월드컵에서 떨어지고 만다.


또한 1985년, 다시 1986년 월드컵이 찾아오기 전에 열린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도 타이전 1골, 연이어 열린 바레인전에서 2골, 그 이후 이라크전에서도 2골을 넣으며 5골을 넣은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1986년 월드컵 예선전 엔트리에 당당히 이름에 올리는데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1차 예선에서 직접 골을 넣진 못했지만 역시나 좋은 움직임을 보였고, 2차 예선에서 인도네시아에게 골을 넣는데 성공하였으며, 3차 예선에서 일본전때 일본진의 수비진을 흔드는 활약을 보이는 활약으로 대한민국이 FIFA 월드컵 본선에 참여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었다. ( 다시 말하지만 최순호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이미지로서 좋은 패스로 창조적인 공격을 열어내는 선수였다. )


그리고 대망의 본선전이 열렸으나,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등의 강호와 만만치 않은 상대인 불가리아와 같은 조에 걸리면서 사실상 그 이상의 진출은 매우 힘들어보였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차범근이 본선부터 합류한다는 부분이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벽은 높아보였다. 실제로도 불가리아전에서 1:1 무승부, 아르헨티나에게 3:1 패배, 이탈리아에게 3:2 패배를 함으로서 1무 2패로 탈락하지만, 당시 한국이 모든팀에게 골을 넣었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것은 한국의 이름을 빛내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최순호는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기록하는데 성공하며, 이탈리아에게 다시 한번 최순호의 이름을 세겨넣었다. 이 1986년 월드컵에서 최순호는 총 1골 3도움의 기록을 올렸으며, 그 이후 열린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인도전에서 1골, 인도네시아 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1986년을 빛내는 스트라이커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 이후 1990년까지 꾸준히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으며, 103경기를 출전하고나서 최순호가 공식적으로 은퇴하였지만, FIFA 에서 95경기만을 인정해 센츄리클럽에서 어이없게 탈락된 일화도 있다.개불쌍


당시 최순호가 국가대표나 경기에서 뛰면서 " 너무 뛰지 않는다. 게으르기 짝이 없다. " 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명실상부 1980년대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서 활약한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최순호 본인이 이 점에 대해서 " 비효율적이라 뛰지 않았다. 나쁘게 말하면 안뛰는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선택이 옳았다고 본다.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는데 집중해야 하기에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도 불필요하게 많이 뛰지 말라고 한다. 내가 (이)동국이를 데리고 있을때 많이 움직이지말고 필요할때만 움직이라고 했다. " 라고 말하며 해명하기도 했다.




2. 황선홍(1990~2002)




" 그는 마치 베르캄프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를 한다. "


A매치 103경기, 50골. 한국산 폭격기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황선홍은 한국에서 가장 완성형 스트라이커로서 뽑힌다. 현재 포항 스틸러스에서 스틸타카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황선대원군황선홍은 현역 당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빼어난 위치선정 능력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였으며, 뛰어난 헤딩능력과 슈팅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수비수를 여러명 끌고다님에도 불구하고, 순간속도와 특유의 지그재그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벗겨낼 수 있는 스트라이커였다.


더불어 최순호가 활동량이 적었던것과는 대조적으로, 폭넓은 활동량과 뛰어난 시야능력으로 세컨트 스트라이커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었으며,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서 50골이라는 대 기록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14년이라는 기나긴 국가대표 경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은퇴하기전까지 발군의 능력을 보인것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중 한명으로 알려져있다.


황선홍은 건국대를 졸업한 뒤, K리그 드리프트 제도를 거부하고 독일의 레버쿠젠(아마추어)차범근!로 이적하게 된다. 리그에 출장하진 못했지만 좋은 첫시즌을 보낸 황선홍은 2부리그 부퍼탈 SV로 임대되어 5경기 3골이라는 좋은 기록을 보여주며 순항하고 있었지만, 경기 도중 무릎을 다치는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통째로 말아먹게 되고 결국 독일 생활을 접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 이후 K리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여 6시즌간 52경기 26골을 기록하였고,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며 36경기 30골이라는 센세이션한 기록을 만든후, J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당시 K리그 드리프트에서 황선홍을 부르기 위해 포항 스틸러스는 무려 황선홍을 가져간 완산 푸마(전북 버팔로, 해체함)에게 4:1 트레이드를 감행하는데 그 멤버중엔 K리그 베스트를 5번이나 차지했던 노장 이흥실(사실 이흥실은 완산 푸마에서 선수겸 코치로 지도자경력을 쌓으려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K리그 득점왕 2회를 했었던 이기근을 포함해 유승관, 이영록까지 넘겨주며 황선홍을 데리고온 일화가 있다. 현재까지 K리그에서도 4:1 트레이드는 황선홍이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그 당시 황선홍의 파급력이 어느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이후 다시 수원으로 이적하였으나, 부상으로 정규 시즌에 뛰지 못하고 가시와 레이솔에 2년간 임대되어 34경기 12골이란 준수한 기록을 보여주었고, 이후 자유계약으로 풀려난 황선홍은 전남으로 이적하게 되지만, 다시 부상으로 인해 결국 은퇴하며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러한 황선홍은 1988년 최순호가 국가대표의 기량으로 떨어지고 있을때쯔음 한국의 구세주로서 등장하게 된다. 건국대 출신으로 뛴 황선홍은 1998년 AFC 아시안컵에서 데뷔하였는데, 예선에서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골을 터트렸고, 본선 A조에서도 일본전에 출전해 선제골을 넣었으며, 이란전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2골을 기록했고, 이러한 활약으로 1990년 월드컵 예선에 승선하게 된다.


1989년 월드컵 예선 1라운드에서 싱가포르전 2골, 말레이시아전 2골로 4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친 황선홍은 최종라운드에서도 북한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했고,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도 1골을 기록하며 총 6골로 한국의 본선 진출을 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러나 본선에서 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등 유럽 강호들을 상대로 대한민국은 3경기에서 황보관만이 단 한골만을 뽑아냈을 정도로 유럽의 커다란 벽을 느끼며 돌아와야했다. 그 이후 1990년 아시안게임에서도 파키스탄전에서 3골을 몰아치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활약을 보였다. ( 이때까지도 무려 프로가 아니였다. )


그리고 1994년 다시 월드컵이 찾아왔고, 황선홍은 1차 라운드 6경기에서 좋은 기회를 몇번이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골 결정력의 부재로 시달려야만 햇다. 그이후 최종 라운드에서도 4경기 연속으로 득점하지 못했고 10경기 연속 무득점을 이어가며 공격수가 받을 수 있는 비난이란 비난은 다 받았고 북한전을 상대로 1골을 넣으며 간신히 치면치레를 했다.


당시 본선 상대는 독일, 스페인, 볼리비아로서 독일, 스페인은 유럽의 강호였고 간신히 볼리비아정도와 50:50 의 전력으로 사실상 본선 진출은 매우 힘들어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국이 스페인전에서 서정원의 90분 극장골로 2:2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하였고 볼리비아전에서 승리한다면 노력여하에 따라 본선 진출이 가능할 수 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황선홍이 볼리비아전에서 유일하게 있었던 결정적인 득점찬스에서 득점에 실패함으로서 황선홍은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서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다시 한번 직면하였다.으이구불쌍


결국 볼리비아전에서도 무승부로 끝난 한국은, 독일전에서 전반 내리 3골을 먹히며 3:0 패배가 거의 확정되는듯 싶었다. 그러나 황선홍의 기적같은 52분 골에 이어, 홍명보의 62분 연속골로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3:2로 경기를 마치게 된다. 당시 독일언론은 " 결과는 독일의 승리, 그러나 경기력은 한국의 승리였다. " 라며 한국의 투혼을 인정했고 경기시간이 조금만 길었더라면 경기결과가 바뀌었을것이라고 했다. 황선홍도 이 경기에서 1골을 넣었기에 체면치레를 하며 비난여론을 잠재웠다.


그 이후 1994년 아시안게임에서 네팔전을 상대로 황선홍은 무려 8골을 뽑아내었고, 월드컵에서의 골부진여론을 순식간에 잠재웠다. 이 8골 기록은 한국 A매치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으로 남았으며, 그 이후 오만전에서도 1골로 2-1승리를 견인하였고, 일본전에서도 2골로 3-2 승리를 견인해 아시안컵 득점왕에 수상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1996년 AFC 아시안컵에서도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1골,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면서 3경기 3골의 기록으로 8강에 진출한다. 그러나 8강에서 한국은 이란에게 6-2 패배로 8강에 만족해야만 했다.


황선홍이 이렇게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에서 다시 득점력을 회복하자, 한국은 당연히 황선홍을 1998 월드컵에 엔트리로 선발했고, 주전으로 기용될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안타깝게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함으로서중국ㅅㅂ 엔트리에 들고도 경기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서 안타까운 월드컵해를 보냈다. 당시 대한민국은 최용수란 걸출한 스트라이커와 이동국이란 유망주 스타를 낳았지만, 황선홍의 부재, 그리고 유럽과의 실력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본선에서 탈락한다.


황선홍은 1998 월드컵을 참가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도 J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히딩크는 그러한 황선홍을 주목했다. 그리고 히딩크는 황선홍을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차출하였고, 프랑스에게 5-0으로 패배하지만 그 이후 멕시코전에서 2-1로 승리하였고 여기서 황선홍은 선제골을 넣는데 성공하였으며 그 다음 펼쳐진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에 견인해 3경기 2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낸다.


그 이후 2002 월드컵 본선에서도 출전하였던 황선홍은 1라운드 D조의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월드컵 본선 첫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본인에게 있어서도 국가대표 통산 50번째 골이라는 의미있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 황선홍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은퇴선언을 하며 국가대표 커리어에 종점을 찍었다. 


황선홍은 매우 이동국을 아낀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황선홍이 2002년에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해, 월드컵이 끝나고 은퇴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상당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로 통한다. 


황선홍은 총 103경기를 출장하여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센츄리 클럽에 가입하였고, 그의 경기당 득점력은 현재 한국 국가대표중 가장 높은 경기당 득점률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외에도 국가대표 한경기 최다 골 기록 역시 황선홍이 가지고 있다.


황선홍은 역대 스트라이커를 잇는 계보중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골 득점력이 부진하다며 비난을 받은 아이러니한 선수다. 현재까지도 이 황선홍만큼 득점을 했던 선수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황선홍의 50골 득점기록은 깨지기 힘들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더불어 황선홍은 현 국가대표 감독인 홍명보와 A매치에서 무려 72번이나 호흡을 맞춘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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