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나단과 다비드



토우코가 학교에서 기르는 닭 5마리의 이름은 후설, 공자, 로저, 마쿠즈, 그리고 조나단입니다. 이 중에서 조나단은 혼자 다른곳에서 온 특별한 아이죠. 그리고 토우코가 카케루를 처음 올려다보고 연상한 이름은 다비드입니다. '조나단'과 '다비드', 각각 히브리어식으로 쓰면 '요나단'과 '다윗'입니다. 이쯤이면 눈치채실 분이 계시겠지만 이 둘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왕국의 왕자이고, 다윗은 그와 아주 절친했던 친구였으며 훗날 이스라엘 왕국의 제 2대 왕이 되는 인물인데요.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을 때, 요나단이 자신의 아버지에 맞서서 친구 다윗을 보호해 준 일화로 유명하지요. 요나단은 암살의 위험에 빠진 다윗을 빼돌려 도망시켜주며 자신의 칼을 줍니다.


램브란트,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 1642, 목판에 유채. 정면으로 서있는 사람이 요나단이고 안겨있는 사람이 다윗.


아무튼 글라스립에서 조나단과 다비드라는 이름이 함께 등장한건 우연이 아닐겁니다. 구약에서 이 두사람의 관계가 아주 끈끈했던 것처럼, 글라스립에서도 조나단과 다비드는 굉장히 동질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나단이 외부에서 들어와 혼자 걷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비드 역시 다른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합니다. 서로 처지가 비슷해서인지 조나단은 다비드가 가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았고, 토우코가 그것을 신기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P.A.Works, '다비드와 조나단의 만남', 2014, 종이에 연필과 디지털 채색


조나단이 카케루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나머지 닭들은 토우코의 친구들을 나타내는 것일겁니다. 조나단을 제외한 닭이 전부 4마리인 것과 그 닭들이 각각 친구들에게 한 마리씩 할당(?)된 것은, '조나단과 4마리의 닭들과 토우코의 관계'가 '카케루와 4명의 친구들과 토우코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렇게 보면, 카케루가 토우코에게 했던 말들('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풀어놓는게 좋다는 것은 너의 가치관일 뿐이다', '스스로 우리에 들어가는 동물이 없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과 토우코가 자신의 집에 조나단을 데리고 와서 했던 말들('지금 행복해?',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나는 너를 지켜내고 있는 거야?')이 굉장히 신경쓰이지 않나요?



2. 나'도' 미래를 보고 싶어!



카케루는 토우코에게 자신들이 보는 환영은 '미래의 조각'이라고 알려줍니다.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카케루의 생각이고, 현재(8화)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상태에서 보면 그다지 신빙성 있는 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한가지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2화에서 나온 미래의 조각이자, 지금까지 본 미래의 조각 중에서 유일하게 현실로 실현된 "나'도' 미래를 보고 싶어"입니다. 여기서 '도'를 강조한 것은 그것이 바로 결정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미래를 보고싶어."


토우코와 카케루가 전망대에서 만났을때, 토우코가 본 미래의 조각은 "나도 미래를 보고 싶어"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실제로 토우코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 미래를 보고 싶어"입니다. 주격조사 '-도'가 생략됐죠. 정말 아주 사소한 차이입니다만 작가(각본가, 혹은 감독)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지나치기 힘듭니다. 작가가 각본을 썼을 때, 이 장면을 통해서 '그들이 보는 환영은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토우코의 두 대사는 정확히 일치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서로 다른 두 대사를 연달아 들려주는 연출을 보면 작가의 실수이거나 성우의 재량이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이 차이는 분명 작가의 의도된 설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나, 미래를 보고싶어."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보는 미래의 조각은 바뀔 여지가 있다는 뜻일까요? 카케루로부터 미래를 보는 능력에 대해 듣고나서 무의식적으로 '나도 미래를 보고 싶어'라고 생각한 것이 미래의 조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요? 미래의 조각은 그저 그들의 무의식의 세계인 것이 아닐까요? 신경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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